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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유튜브에 공개된 '암사역 흉기난동' 사건 동영상. 유튜브 캡처

“요즘엔 경찰 시험에 합격하면 가족이나 연인이 축하 선물로 뭘 주는 지 아세요? ‘보디 캠’이예요. 일하다 괜한 시비에 휘말려 억울하게 당하지 말라는 거죠.” 서울 시내 한 지구대 관계자의 귀띔이다. 보디 캠은 제복 위에다 달아두는 초소형 카메라로 출동 때 직접 영상을 찍는 장비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초동 수사를 맡은 일선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들이 범죄 현장을 녹화, 녹음할 수 있는 보디 캠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찰 내부망에도 “보디 캠 보급을 확대해달라”는 요청이 수 차례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마냥 보급을 늘릴 수만도 없다. 보급에 앞서 사생활 침해 우려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경찰관들이 보디 캠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논란이 벌어졌을 때 가장 확실한 증거로 낼 수 있어서다. 조그만 디지털 장비 하나로도 누구나 녹음, 녹화를 다 할 수 있는 시대다. 일선 경찰관으로선 자신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최근 사건은 보디 캠 필요성을 보여준다. 서울 역삼동 ‘버닝썬’ 클럽 사건은 사건 초기 김모(28)씨의 자극적 폭로가 판을 키웠다. 김씨는 클럽 직원뿐 아니라 출동한 경찰에게도 폭행당했다며 클럽과 경찰 간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돌기도 했다. 이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경찰은 현장에서 촬영된 보디 캠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엔 김씨가 난동 부리는 듯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앞서 지난달 13일 서울 지하철 8호선 암사역 출입구에서 한모(19)군이 흉기를 휘둘러댔던 ‘암사역 흉기 난동’ 사건도 그랬다. 삼단봉과 테이저건(전기총)으로 무장한 경찰관이 한군을 제압하지 못하는 듯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초등대응이 미숙했다는 지적이 일자 경찰은 보디 캠에 찍힌 한군 체포 장면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천호지구대 소속 경찰이 21만원의 사비를 들여 구입한 보디 캠으로 촬영한 것”이라는 게 강동경찰서 관계자의 설명이다.

보디 캠이 허용된 건 2015년 10월부터다. ‘웨어러블 폴리스캠(Wearable Policecam)’이란 이름으로 공무집행 방해, 경찰을 향한 폭언ㆍ폭행 등 난동행위를 예방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치안 수요가 많은 서울 마포ㆍ영등포ㆍ강남경찰서 산하 지구대와 파출소에 100대가 우선 지급됐다. 급한 사람은 자기가 구해다 쓴다. 사비를 들여 산 보디 캠의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웨어러블 폴리스캠. 경찰청 제공

이 때문에 보디 캠 확대가 초상권 등 시민의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디 캠 같은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2016년 12월 보디 캠은 물론, 드론 등 다른 영상장비들 운영 규칙을 담은 ‘개인영상정보보호법’ 제정안을 만들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찰청은 일단 내부적으로 ‘웨어러블 폴리스캠 시스템 운영규칙’을 훈령 형태로 하달해둔 상태다. 이 규칙에 따르면 시위 현장이나 불심검문 때는 보디 캠 사용이 금지된다. 보디 캠 녹화 때는 상대방에게 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칙은 최소한의 규제 방안에 불과한데다, 규칙을 위반했을 때도 내부 징계를 받는 수준에 그친다. 더구나 이 규칙은 경찰이 공식 지급한 보디 캠 100대에만 적용되고, 다른 경찰관들이 사비로 구입한 보디 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창범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겸임교수는 “보디 캠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장비인 만큼, 한시 바삐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오ㆍ남용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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