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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SKY캐슬'은 마지막 회에 모든 인물이 갑자기 욕망을 내려놓고 옛 일을 뉘우쳐 급조된 해피엔딩이란 비판도 받았다. 배우 염정아는 “결말은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아갈머리’ 대사 입말 살리려 ‘확’ 넣었더니…

아갈머리. 입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시궁창에서도 꽃은 피기 마련. 천한 저주의 단어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이게 진짜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 JTBC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에서 서진(염정아)이 수임(이태란)에 퍼부은 말이 상스럽게만 들리지 않은 건 인간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사용됐기 때문이다. 선지를 팔던 주정뱅이의 딸이 상류층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쏟아 부은 안간힘. ‘개천’에서 나고 자란 서진의 “아갈머리”는 우악스러운 욕설이 아니라 절규에 가까웠다.

이 대사의 중요성을 염정아(47)도 알고 있었다. 염정아는 아갈머리란 뜻을 사전으로 찾아본 뒤 단어를 입에 굴리고 또 굴렸다. “대본엔 ‘이게 진짜 아갈머리를 찢어버릴라’라고 만 돼 있었어요. 근데 연습하다 보니 입에 잘 안 붙더라고요. 그래서 ‘확’이란 단어를 넣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현탁) PD님에 제안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한 걸 방송에서 (유현미)작가님이 보셨는지 나중엔 아갈머리 나오는 대사에 확자가 들어가 있더라고요.” 8일 서울 논현동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의 말이었다. 서진은 같은 ‘캐슬’에 사는 진희(오나라)에게도 “아갈머리”를 선사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염정아가 드라마 'SKY캐슬'에서 딸 예서를 연기한 김혜윤을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 염정아는 "울컥한 감정이 목까지 차 올랐다"고 했다. JTBC 제공
◇6개월 노력의 열매 “아이 친구들이 사인 부탁”

‘SKY캐슬’이 인기를 끈 데는 염정아의 공도 컸다. 그는 학벌사회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식을 올려 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의 어긋난 욕망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이 터져라 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염정아가 극중 잘못된 교육 방식을 깨우친 뒤 딸 예서(김혜윤)를 끌어안고 “엄마가 미안해”라며 흐느낄 땐 ‘핏줄까지 연기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서울의대 입학을 위해 서진과 예서가 예서 네 살 때부터 달려왔잖아요. 네 시간 이상 자본 적도 없고요. 그런 엄마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을 찍는 장면에서 첫 대사를 하는데 울컥한 기분이 목까지 올라오더라고요. 서진이 잘못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염정아는 드라마를 촬영하는 6개월 동안 서진으로 살았다. ‘그레이스 켈리보다 진주 목걸이가 잘 어울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 의상에도 특히 신경을 썼다. 드라마의 시놉시스에 적힌 서진 캐릭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촬영이 없을 때도 대본을 끼고 살았다. 염정아는 “섭외 제안이 왔을 때 본 대본을 보고 처음부터 역에 욕심이 났다”고 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노력의 열매는 달았다. 염정아가 이끈 ‘SKY캐슬’은 1일 시청률 23.8%로 막을 내렸다. 비(非)지상파 채널 역대 최고 시청률이었다. 염정아는 “두 아이가 친구들이 부탁한 사인을 해 달라고 할 때” 인기를 실감한다. 염정아는 슬하에 올해 초등학교 5학년과 4학년이 된 두 아이를 뒀다. 배우 김혜수도 염정아에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 “혜나, 한서진 딸이지?”라고 물을 정도로 드라마 팬이었다고 한다.

배우 염정아가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역을 맡은 김서형에 딸을 맡아달라 하소연하는 장면. JTBC 제공
◇“한서진과 닮은 건 의사 남편·두 아이 뿐”

염정아와 극중 서진은 묘하게 겹친다. 염정아는 실제 정형외과 의사인 남편을 뒀고, 서진의 남편 준상(정준호)도 정형외과 전공의다. 아이도 똑같이 둘을 뒀다. 서진과 더 닮은 점은 없냐는 질문에 염정아는 두 팔로 ‘엑스(X)’자를 만들었다. 말보다 강한, 몸짓으로 보여준 강한 부정에 인터뷰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그도 ‘입시공화국’ 한국에 사는 어쩔 수 없는 엄마다. 염정아는 두 아이를 모두 학원에 보낸다. 그는 “두 아이 스케줄표를 종이에 큰 자로 직접 그리면서 짠다”며 멋쩍게 웃었다. 염정아의 입에선 “두 아이의 학년이 달라 학교 끝나는 시간이 엇갈리고 학년이 바뀌면 배우는 과목이 늘어 시간표까지 바뀌니 아이들 (픽업하는) 일정표 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 두 번 짜본 게 아니란 얘기다. 염정아의 엄마로서의 현실은 서진보다 진희에 가깝다.

“물론 아이들이 싫다는 건 안 시키지만 그렇다고 수임(이태란)이네처럼 학원 안 보내고 아이 공부시키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잖아요. 저도 아직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진희 말처럼요. 아이들 대입까진 많이 남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전업주부 수현을 연기한 염정아. 그는 극중 남편 태수에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주부 아닌 염정아 찾는 곳 있어 행복할 따름”

염정아는 1991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 배우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해 20~30대엔 세련된 도시 여성을 주로 연기했다. 그때만 해도 염정아가 누군가의 엄마 역을 소화하는 중견 배우로 자리 잡을 거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염정아는 선입견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영화 ‘카트’에서 대형 마트 비정규직을, ‘완벽한 타인’에선 남편에 구박받는 전업주부 역을 맡아 연기 폭을 넓혔다. 청춘스타로 살다 중년이 돼 누군가의 부모 혹은 옆집 주민이 되지 못하고 진 ‘별’들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그는 도전으로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연장했다. 염정아는 “흐르는 세월뿐 아니라 내게 들어오는 (아줌마 등의)역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덕”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데뷔한지 28년이 된 배우는 “주부 외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여성이 나이 들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곳이 바로 연예계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엄마 배우는 요즘 누구보다 바쁘다. 염정아는 지난해 ‘SKY캐슬’을 비롯해 영화 ‘뺑반’ ‘미성년’ ‘완벽한 타인’ 등 네 작품에 출연했다. “아시다시피 결혼 후 혹은 출산 후 경력 단절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많잖아요, 이 직업 특성상이요. 전 운 좋게 다시 돌아왔고 다양한 배역이 들어왔죠.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염정아는 10일 푸껫으로 휴가를 떠난다. ‘SKY캐슬’ 촬영을 끝낸 뒤 출연 배우 및 스태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그런 그는 뮤지컬 영화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었다.

“옛날엔 노래도 춤도 제법 했거든요. 한국에도 ‘맘마미아’ 같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도나 역을 연기한 메릴 스트리프, 정말 멋있지 않나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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