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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웅 원로신부 인터뷰
[저작권 한국일보] 김수환 추기경의 제안으로 1986년 2월 실천하는 피정 프로그램인 ‘나눔의묵상회’를 만든 최선웅 원로신부가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자택에서 김 추기경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김 추기경을 떠올리며 여러 번 행복한 웃음을 터트렸다. 고영권 기자

5년 전 은퇴한 최선웅(75) 원로신부는 34년 전 고(故)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 “한국 실정에 맞는 피정(가톨릭 신자가 일상에서 벗어나 일정 기간 동안 하는 종교적 수련)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회장이었던 최 신부에게 김 추기경이 운을 띄웠다. 1980년대 한국은 사회 복지의 불모지였다.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정치는 어지러웠다. 빈부격차는 사납게 커졌다. 피정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나누라는 것, 김 추기경의 메시지였다.

1년 뒤인 1986년 최 신부는 장애인, 독거노인, 노숙인, 빈민 등 소외된 이웃을 돕는 피정 프로그램인 ‘나눔의묵상회’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피정의 중심이 가톨릭 신자 개개인의 신앙심을 북돋는 것이었다면, 신앙심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을 목표 삼은 새로운 피정 프로그램이었다. 김 추기경 선종 10주기(16일)를 앞두고 최 원로신부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자택에서 만났다.

최 원로신부의 회상. 1980년대 그는 ‘어떻게 하면 사제로서 사회에 도움이 될지’를 고민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김 추기경을 만나 물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보통 도와줄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지요. 그런 고민 없이, 저절로 호주머니에 손이 가는 나눔을 실천하는 길을 찾아 보면 어떨까요.” 그 한 마디가 최 원로신부의 삶을 바꾸었다.

나눔의묵상회에서 마련한 바자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지은 표어 ‘나눔은 사랑입니다’를 친필로 남겼다. 나눔의묵상회 제공

‘봉사를 통한 나눔’을 앞세운 피정 프로그램이라는 아이디어에 김 추기경은 기뻐했다. ‘나눔의묵상회’라는 이름도, ‘나눔은 사랑입니다’는 피정 표어도 김 추기경이 직접 지었다. “처음엔 ‘스크루지 피정’이라고 불렀어요.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을 딴 이름이었죠. 개과천선하는 스크루지처럼 피정을 통해 다시 태어나자는 뜻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이 좀 그래서 추기경님과 상의해 ‘나눔의묵상회’로 바꿨어요.”

김 추기경은 나눔의 묵상회의 재원도 마련해 주었다. 천주교서울대교구가 서울 명동 로열호텔에 세를 놨던 주차장(현재 명동성당 내 파밀리아 채플) 운영권을 내 준 것. “임대료가 저렴해 추기경님도 처음엔 큰 재원은 못 될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1980년대 말 자동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수익이 엄청나게 불어났지요(웃음).” 현재는 나눔의묵상회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회비로 운영된다.

김 추기경은 왜 최 원로신부에게 나눔의 소명을 맡겼을까. 최 신부는 1970년대 부제서품 면접 심사장에서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났다. 김 추기경의 온화한 표정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털어 놨다. “허리가 굽거나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가는 모습만 보면 찡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 추기경은 아무 말 없이 끄덕이며 미소만 지었다. “저의 그런 마음을 추기경님이 읽고 간직하고 계셨다가 나눔의묵상회를 맡기신 게 아닌가 합니다. 피정에 참여하는 분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실제로 그 때 그 찡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사회복지에 앞장서기 위해 1976년 직접 창립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현판을 달고 있다. 나눔의묵상회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피정 프로그램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제공

최 원로신부가 기억하는 김 추기경은 근엄하기보단 소탈한 사람이었다. “노인 한 분이 ‘추기경님 저 여기 저기 아파서 더는 못 살겠어요’라고 하셨어요. 추기경님은 ‘정말 죽을 거에요? 정말이요?’ 짓궂게 되물으셨죠. 선물 받은 귀한 양주를 신부들에게 나눠 주시면서 ‘이런 게 나눔이에요’ 하고 농담하신 모습도 생생합니다(웃음).” 최 원로신부가 김 추기경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03년 서울 혜화동 주교관에서였다. “언제 식사 한 번 하시죠.” 최 원로신부의 인사에 김 추기경은 “(아파서) 밥 먹는 게 가장 힘든 걸요”라고 말하며 빙긋 웃었다.

나눔의묵상회는 33년째 이어지고 있다. 매년 분기마다 2박 3일간 진행되는 피정에 지난해까지 4,853명이 참여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나도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세상이 그 만큼 각박해지고 나눔이 줄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습관처럼 나눔을 행하고자 했던 추기경님의 뜻을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1999년 서울 장지동 화훼마을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을 만나고 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제공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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