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누르고, 서영교 밀어주고'…철저했던 ‘사법농단’ 전말

입력
2019.01.17 13:54
지난 해 10월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 한 시민이 삿대질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 해 10월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 한 시민이 삿대질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검찰이 수사한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에는 법원행정처의 철저한 ‘당근과 채찍’ 전략이 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의 지상 목표였던 상고법원 신설을 두고 강력하게 반대했던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에게는 채찍을 가하고,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는 당근을 준 셈이었다. 당시 두 의원에게 돌아간 결과물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지만 검찰은 그 수단만큼은 치밀하게 계산된 재판 개입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사범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지난 15일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한국일보는 국회에 제출된 임 전 차장 추가 공소장을 통해 당시 서기호, 서영교 두 의원을 중심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사법부의 ‘재판개입’ 과정을 재구성했다.

 ◇신임 기조실장 임종헌에게 내려진 미션 

2012년 중반, 대한민국 대법원의 실세 조직이었던 법원행정처는 그 해 초 ‘쫓겨난’ 한 판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다른 판사들처럼 법원을 나가 변호사로 활동했다면 큰 고민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 전직 판사는 얼마 후 국회의원이 돼버렸다. 사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던 정의당 소속인 것도 모자라, 이 초선 의원은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법원을 피감기관으로 두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서기호 전 의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서 전 의원은 2012년 2월 재임용 탈락 결정을 내려 사실상 자신을 쫓아낸 법원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같은 해 8월 서울행정법원에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피고로 하는 소송까지 제기했다. 일부 소장판사와 법원노조, 정치권, 시민단체는 서기호 전 판사의 재임용 탈락 과정에 의문을 제기한 상태였고, 법원행정처 입장에서는 숱한 비판 여론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 지금의 사법농단 사건 ‘키맨’으로 불리는 임종헌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히는 기획조정실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임 전 실장에게 서 전 의원 소송은 사실상 실장으로서 해결해야 하는 첫 중요 임무가 됐다.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에서도 엘리트로 꼽힌다는 행정처 내 심의관(판사)들로 이뤄진 소송수행팀을 별도로 조직하고 전면 대응에 나서기로 한다.

서기호 전 북부지법 판사는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조롱 풍자 해학 비판을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공인" 이라며 "그렇지만 '가카 빅엿' 발언으로 일반 국민들과 동료 판사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말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2012-03-06(한국일보)
서기호 전 북부지법 판사는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조롱 풍자 해학 비판을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공인" 이라며 "그렇지만 '가카 빅엿' 발언으로 일반 국민들과 동료 판사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말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2012-03-06(한국일보)

 ◇플랜 A와 플랜 B 

법원행정처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서 전 의원이 패소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비판적 여론이 지속되는 가운데 재판은 더디게만 진행됐다. 결국 재판이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속도를 내지 못하자 임 실장은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기획조정실 한 심의관에게 재판을 빨리 진행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2013년 9월 1일 이 실무자는 ‘서기호 의원 소송의 현황과 향후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두 가지 계획이 제시됐다. 하나는 재임용 탈락을 결정한 법원행정처가 소송의 한 당사자인 만큼 정식 재판 절차를 통해 속도를 내도록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비공식적으로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요청하는 방안이 있다고 정리했다. 문건을 작성한 심의관은 비공식적으로 재판부에 요청하는 것은 부당한 재판개입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며 정식 절차에 맞게 기일지정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를 한다.

일단은 법원행정처가 재판 날짜를 빨리 정해 달라고 신청하면서 ‘플랜A’가 가동된다. 하지만 판사 출신이었던 서기호 의원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담당 재판부에게 자신이 과거 판사로 재직할 당시 작성된 근무평정 자료를 법원이 제출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요구한다. 부당한 재임용 탈락인지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료라는 이유였다.

담당 재판부는 신청을 기각한다. 서 의원은 다시 요청을 하고 또 기각되고, 급기야 2015년에는 근무평정 자료 요구가 타당한지를 두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법원행정처의 바람과는 달리 재판은 더욱 늘어지게 된 것이다.

 ◇상고법원 난항과 플랜 B의 가동 

그 사이 사법부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이하 법원행정처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상고법원 신설 문제가 국회 입법 과정에서 발이 묶여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입법 과정에서 상고법원 신설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던 사람은 다름아닌 서기호 의원이었다.

결국 2015년 3월 법원행정처 수뇌부는 또 다시 서기호 전 의원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당시 고위 관계자가 서 의원을 만나 설득해 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이에 임종헌 실장은 ‘플랜B’를 가동하기 시작한다. 검찰이 분석한 임 실장의 목표는 뚜렷했다. ‘서기호 의원이 재판에서 패소하게 되면 상고법원에 반대하고 있는 그의 개혁 이미지에 타격을 주거나, 서기호 의원에게 정치적,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소송을 서기호 의원의 패소로 신속히 종결시켜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지 못하도록 서기호 의원을 압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임 실장은 곧바로 비공식 라인을 가동한다.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서울행정법원의 수석부장판사에게 연락해 서기호 의원의 사건이 왜 빨리 진행되지 않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지시한다. 수석부장은 재판을 맡고 있던 A재판장에게 연락했다. A재판장은 근무평정 관련 절차 문제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상황을 설명했고 수석부장은 이 내용을 다시 임 실장에게 보고한다.

서 의원의 재판을 신속히 마무리 짓기 위해 계속해서 방안 마련에 골몰하던 그는 2015년 5월 법원 전산망을 통해 서기호 의원의 근무평정 자료 제출 요구가 최종적으로 기각된 사실을 파악한 후 다시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신속한 재판 종결을 요구했다. 며칠 후 다시 수석부장판사의 요구를 받은 A재판장은 재판 일정을 다시 잡아 2015년 8월 13일 서기호 전 의원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다. 법원행정처의 실무진은 선고가 내려지기도 전에 판결문을 미리 전달 받아 선고 결과 및 판결 이유를 수뇌부에 보고하는 기민함까지 보인다.

2년을 넘게 끌었던 재판이 ‘플랜 B’ 가동 5개월여 만에 법원행정처의 바람대로 종결된 것이다. 임종헌 실장은 같은 달 차기 대법관 지명 1순위 후보군에 속한다는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승진한다.

 ◇ ‘바바리맨’ 사건 해결사로 나선 임종헌 

상고법원 신설이라는 ‘과업’을 두고 임종헌 실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서 전 의원 소송뿐만이 아니었다. 임종헌 전 실장은 2015년 5월 국회에 파견을 나가 있는 B판사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된다.

‘서영교 의원이 직접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서영교 의원은 피고인(이모씨)이 공연음란의 의도는 있었지만 강제추행의 의도는 없었고, 추행의 의사가 없었으니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서영교 의원이 B판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지역구 당선에 큰 도움을 줬던 측근의 아들에 대한 사건 선처를 청탁했다는 것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이 지인의 아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귀가하던 여성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한 채 껴안으려 했다는, 강제추행미수 혐의였다.

검찰은 이 상황에서 임종헌 실장을 비롯한 법원행정처가 서기호 의원과 마찬가지로 상고법원 신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법사위 위원 서영교 의원의 지위를 고려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상고법원 신설에 찬성하는 법안에 서명을 했으면서도 법안 통과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서영교 의원의 행보를 계산에 넣었다는 것이다. 서영교 의원을 설득하고 사법부가 추진하는 주요 법안과 정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법원행정처가 ‘바바리맨’ 사건 재판에 개입할 만한 동기가 충족됐다고 봤다.

3일 4·11 총선 서울 중랑갑 민주통합당 서영교 후보가 중랑구민회관에서 열린 외식업중앙회 중랑구지회 정기총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2012-04-03(한국일보)
3일 4·11 총선 서울 중랑갑 민주통합당 서영교 후보가 중랑구민회관에서 열린 외식업중앙회 중랑구지회 정기총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2012-04-03(한국일보)

대응은 신속했다. 임종헌 실장은 보고를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해당 사건 선고가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재판이 진행 중인 서울북부지법의 법원장에게 직접 연락을 한다. 서영교 의원의 바람대로 벌금형 선고를 포함, 재판을 끝내지 말고 변론을 더 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당시 북부지법원장은 그 즉시 재판을 맡고 있던 C 재판장을 법원장실로 호출해 임종헌 전 실장의 청탁 내용을 알린다.

급박한 시일을 고려한 탓인지 임종헌 실장은 법원장을 통한 청탁으로 그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에 있던 판사를 통해 C재판장의 직속 상사인 판사를 접촉, 청탁을 들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하도록 했다. 강제추행미수 혐의 피고인 이씨는 과거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벌금 500만원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다만 검찰은 C재판장이 북부지법원장의 요청을 받았지만 변론을 재개할 사유가 없어서 예정대로 선고를 하겠다는 취지로 보고를 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서재훈기자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서재훈기자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