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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백종옥 지음/반비 발행ㆍ240쪽ㆍ1만8,000원
미하울만_도서관_01. 반비 제공

독일 베를린의 베벨광장 한복판 바닥에는 유리창이 하나 놓여있다. 가로 120㎝, 세로 120㎝ 크기 정사각형 투명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면 텅 빈 듯한 공간 안쪽 사방에 빈 책장이 있다. 아픈 현대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로 책 한 권 없는데도 이름은 역설적이게 ‘도서관’이다. 어떤 역사를 새기기 위해 조성됐는지 돌아보면 조형물의 독특한 모양새에 호응하게 된다.

1933년 5월 10일 밤 베벨광장에서 책 2만여권의 화형식이 열렸다.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베르톨트 브레히트, 에리히 케스트너 등 유명 저자들의 책이었다. 저자들은 유대인이거나 나치에 비판적인 이들이었다. 나치즘에 경도된 독일대학생총연합이 치밀하게 준비해 벌인 정치 이벤트였다. 표현주의와 다다이즘 등 문화의 꽃이 활짝 피었던 예술도시 베를린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독일에 휘몰아친 광풍의 결과는 대부분이 아는 일들이다.

독일 통일 후 반문명적 분서 행위에 대한 반성은 사건 60주년을 맞아 ‘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구체화됐다. 사건이 벌어진 광장 바닥에 설치된 텅 빈 도서관은 야만적 행태를 은유하기에 적합하다. 특정 정치 세력을 비판하거나 특정 저자의 것이라는 이유로 책을 불태우게 된다면 그 나라의 문화는 텅 빈 도서관이라 다름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웅변한다. 사람들은 유리창을 들여다 보며 시대를 돌아보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본인의 삶을 성찰한다. 편견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배척하는 게 얼마나 반문화적인 일인가를 웬만한 교양을 지닌 사람이라면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멀리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조형물을 통해 베를린은 그렇게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의 교훈을 새긴다.

베를린은 격동의 현장이었다. 프로이센제국의 부국강병을 상징하는 곳이었고, 1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독일의 참담함을 대변하는 곳이었다.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경기장을 지어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른 곳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됐다가 바로 동서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냉전 시기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선전장으로 활용됐다. 기념하고 싶거나 기억해야 될 역사를 숱하게 품고 있는 곳이기에 조형물들도 넘쳐날 만한 곳이다.

베를린의 역사 조형물들은 요란하지 않다. 생활 속에 스며들어 불쑥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와 같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소근거림에 외려 귀를 기울이는 대중의 심리를 잘 활용한다. 노골적인 이미지로 눈을 낚아채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고, 어떤 이들의 희생을 추념하기 위해 높다란 탑 형식의, 천편일률적인 대형 조형물을 짓곤 하는 우리와 크게 다르다. 변두리 어느 곳에 요란하게 지어진 후 기념일이 아니면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조형물과 달리, 베벨광장의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오래도록 공명한다.

노이에바헤_케테콜비츠_피에타. 반비 제공/2019-01-10(한국일보)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노이에바헤도 ‘도서관’과 맥을 같이 한다. 육중한 고전주의 건물 안에 들어서면 텅 빈 공간 안에 청동상 하나가 단출하게 놓여 있다. 청동상 위 지붕은 원형으로 뚫려 있어 햇볕이 쏟아지거나, 빗물이 들이친다. 겨울엔 눈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청동상에 집중하게 된다. 청동상은 유명 조각가 케테 콜비츠(1867~1945)의 청동상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높이 34㎝)를 네 배로 확대한 복제품이다. 피에타를 연상시키는 청동상은 숨진 아들을 안고 생각에 잠긴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다. 전쟁에서 숨진 모든 아들들과 그 어머니들의 비극과 슬픔을 상징한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며 나라 안팎에서 많은 이들의 희생을 초래했던 독일의 반성과 아픔이 포개진 청동상이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표지. 반비 제공/2019-01-10(한국일보)

책은 눈에 띄지 않게 조성해 오히려 눈길을 끄는 베를린의 기념 조형물 10개를 차분히 둘러본다. 조형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조성됐고, 어떤 의미를 띠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지를 분석해 공공 예술품의 존재 형식을 되묻는다. 독일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를 역임한 저자는 베를린의 조형물이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장소의 맥락과 의미에 적합하게 설치됐다”는 이유에서다.

직설은 종종 예술과 거리가 멀다. 위압도 예술과 어울리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 예술이다. ‘베를린은 기억의 예술관’이라 형용할 만하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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