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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시대의 한류] <3>동남아-영역 넓히는 실험과 도전
K팝 등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를 스포츠로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항서 감독. 지난달 15일 AFF 축구 최종 결승전이 열린 하노이 미딘 경기장 주변에 베트남 국부 호찌민과 함께 초상화가 내걸릴 정도로 현지에서 큰 인기와 존경을 받고 있다.

세계 3대 음원 차트 중의 하나인 영국 ‘오피셜 싱글스 차트’가 지난 4일(현지시간) 발표한 인기 음원 순위에는 한국에도 낯익은 ‘상어가족(Baby Shark)’이 6위에 올랐다. 핑크퐁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1~5분짜리 동요ㆍ영상 콘텐츠 중의 하나로,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 덕분에 한국에서도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다. 8주 연속 40위권 안에 머물고 있는데, 이는 6년 전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10위를 기록한 이후 한국 콘텐츠로는 최고 기록이다.

◇ ‘테스트 베드’ 동남아

햄릿의 작가 셰익스피어로부터 이어온 문화강국 영국의 음원 차트에 한국 동요가 상위에 랭크될 수 있었던 건 최대 한류 시장인 동남아 때문이다. 2017년 9월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베이비 샤크 챌린지(#BabySharkChallenge)’ 해시태깅 붐에 이어 2018년 8월 캐나다에서 난 ‘대박’이 유럽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동영상의 율동을 따라 하는 영상을 만든 뒤 페이스북 등에 해시태그를 붙여 공유하는 놀이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 동요를 들고 나선 것이 불 같은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흥행 덕에 핑크퐁 영문 콘텐츠의 경우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 1000만 구독자를 달성했고 그 가운데 상어가족은 단일 영상으로 강남스타일 이후 국내 최초로 30억뷰를 기록했다.

낮은 가처분소득 수준 탓에 동남아 시장에서는 직접 수익을 올리긴 어렵지만, 과거 식민지배 경험 때문에 동서양 문화에 모두 개방적인 동남아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다면 세계 시장 진출이 그만큼 용이하다는 것이다. 핑크퐁 제작사인 스마트스터디 이승규(45) 공동창업자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주 27위로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는데, 1주일 만에 또다시 21계단을 뛰어 기록을 갱신했다”며 “외국 문화에 개방적인 동남아에서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인기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영역 넓히는 한류

동남아에서 TV드라마, K팝 등 전통의 한류 콘텐츠와 달리 짧은 동영상을 이용한 캐릭터 상품의 흥행은 한류 영역의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영경 전 말레이시아 UNITAR 대학교 교수는 상어가족 성공 배경에 대해 “현지 문화를 잘 파악하고 현지 언어를 적용한 것 외에도 유아용 콘텐츠 특성상 가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들이 전면에 내세워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 한류에 대한 ‘부작용’은 이미 수치로 확인됐다. 2017년 12월 본보가 베트남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 국민 인식조사’가 대표적이다. ‘한국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는 대상이 뭐냐’는 질문에 ‘K팝 아이돌 문화’가 323명(중복응답)으로 4위를 차지했다. K팝이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계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 그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한국인 스포츠 지도자도 한류의 영역을 확대한 경우다. 당연히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이 대표 인물이다. 약체 베트남 팀을 맞은 뒤 특유의 리더십으로 4개월 만인 지난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이뤄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최초 ‘4강’, 지난달 열린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하노이 베트남 국립대 광고홍보학과의 응우옌 티 탄 후엔 교수는 “박 감독은 스포츠가 한류의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며 “박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쌓아 올린 신뢰는 앞으로 한국 스포츠 지도자들의 해외 진출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에서 스포츠 한류의 전망이 밝다는 뜻이다.

◇상류층 파고드는 한류 필요

스포츠 분야에서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베트남 선수를 지도해 베트남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사격의 박충건 감독도 그 가능성을 보여 준 바 있다. 박 감독의 성공은 최초 사례가 아니라, 스포츠 한류의 가능성을 완전히 입증했다는 의미인 셈이다. 아시아의 홈런 타자에서 은퇴 후 야구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이승엽 선수도 동남아시아 야구 전파를 위해 이달 중 베트남 호찌민시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을 대상으로 재능 기부를 시작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의 장기 영속적 발전 여부는 수준 높은 문화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한류가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젊은층에 집중돼 높은 수준의 문화로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후엔 교수는 스포츠가 지난 파급력에 주목했다. “스포츠의 경우 소득과 성별과 나이 고하를 막론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스포츠는 동남아 일부에서 일고 있는 K팝 등 전통적인 한류 문화에서 오는 ‘저항’을 상쇄시킬 유력한 도구로도 거론된다. 김태형 호찌민한국교육원장은 “상류층 공략도 공략이지만 결국은 지속가능성의 문제”라며 “어떤 분야든 단기적인 성과와 이익이 아닌,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한국이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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