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의사폭력’ 조장 논란… 의사들 “멱살잡이는 기본” 토로

입력
2019.01.05 14:00
지난달 8일 방송된 SKY 캐슬 6회의 한 장면. 의사(정준호 분)가 흉기를 들고 찾아온 환자에게 가스총을 들이밀고 있다. SKY캐슬 캡쳐
지난달 8일 방송된 SKY 캐슬 6회의 한 장면. 의사(정준호 분)가 흉기를 들고 찾아온 환자에게 가스총을 들이밀고 있다. SKY캐슬 캡쳐

 

진료 중이던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러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JTBC 인기 드라마 ‘SKY캐슬’의 방송 내용이 비판 받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지난달 3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발생한 의사 살해사건이 “드라마를 모방한 범죄”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문제의 장면은 ‘SKY 캐슬’의 지난달 8일 방송분으로, 수술 결과에 앙심을 품은 환자가 흉기를 들고 병원에 찾아와 의사(정준호 분)를 위협하는 장면이다. 드라마에서 해당 의사는 가스총으로 방어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러한 방어 수단이 전혀 없이 환자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미디어에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는 물론 의료진의 생명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폭력행위를 희화화 해 다루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칫 ‘모방범죄’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통해 학습… 가상이 현실 되는 ‘모방범죄’ 위험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직접적인 경험과 보상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과 그 결과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학습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을 통해 모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학습을 통해 폭력을 모방할 수 있다는 가설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실험이 바로 ‘보보인형 실험’이다. 196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앨버트 반두라는 3~6세 아이들을 둘로 나누고, 한 그룹에는 성인이 보보인형을 망치로 때리는 등 폭력적으로 대하는 영상을을 보여주고 다른 한 그룹에는 성인이 비폭력적으로 장난감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아이들에게 보보인형을 주자, ‘비폭력’ 영상을 본 아이들은 잘 가지고 놀았지만 폭력적인 영상을 본 아이들은 실제로 보보인형을 때리거나 짓밟는 등 폭력적으로 대했다. 관찰학습을 통해 모방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실험의 파장은 엄청나서 사회적 이슈가 됐고, 결국 추후 TV나 영화 등 영상물에 대해 등급분류를 하는 제도가 도입되는 근거가 됐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서적, 정신적 문제로 현실과 허구를 분별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 반복적으로 의사가 폭언이나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현실에서도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가해 항의를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을 사실로 여겨 모방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수의 의사들은 환자가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행하는 가장 흔한 폭력행위가 ‘멱살잡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평상시에 흔치 않은 멱살잡이가 유독 드라마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말로 안 되면 멱살잡이는 기본이라며 넌덜머리를 낸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ㆍ타해 위험이 있어 입원을 권고할 때 ‘나는 정신이 멀쩡하다’며 멱살잡이를 하는 환자들이 상당수”라며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의사 멱살잡이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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