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김군’ 때도 못했던, 원청 책임ㆍ처벌 강화했다

입력
2018.12.27 18:25
수정
2018.12.27 23: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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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김용균법’ 처리 합의]

원청이 안전ㆍ보건조치 위반할 땐 3년 이하 징역 등 처벌 수위 강화

발전정비 제외 등 원안보다 후퇴… “제2 김용균은 여전히 외주” 지적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주요 내용. 그래픽=박구원 기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주요 내용. 그래픽=박구원 기자

정부가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취지로 28년 만에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던 고(故)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이른바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며 법안 처리에 탄력을 얻었으나, 원안보다는 다소 후퇴했다는 평가다.

개정안은 도금 등 유해ㆍ위험한 작업의 사내 도급이나 하도급을 원천 금지하고, 산업재해에 따른 근로자 사망 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도급인(원청)이 안전ㆍ보건조치를 책임져야 하는 범위도 ‘사업장 내 폭발ㆍ붕괴 등 22개 위험장소’에서 ‘도급인의 사업장 및 도급인이 지정ㆍ제공하는 장소로서 도급인이 지배ㆍ관리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로 확대된다. 특히 원청이 안전ㆍ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했을 때 처벌 수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에 이하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된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했던 당초 정부안에 비해서는 후퇴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사업주 측에서 한꺼번에 5배를 올리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있어 조정했다"며 "대신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는 양벌규정에서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던 것을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10배로 상행했기 때문에 자연인인 도급인에 대한 처벌을 다소 낮춰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조정안으로 타협했다"고 말했다.

다만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상에 도금작업과 수은, 납, 카드뮴의 제련ㆍ주입ㆍ가공ㆍ가열 작업, 허가대상물질의 제조ㆍ사용 작업은 포함됐으나, 김용균씨와 같은 발전소 하청 근로자들이 요구했던 발전정비 업무는 제외됐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제2의 김용균’은 여전히 외주화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울러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이번 산안법 전면 개정에서는 보호 대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해 특수형태고용근로자와 택배 등 배달업 종사자들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화학물질 제조ㆍ수입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고용노동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영업 비밀’로 인정하도록 하고, 안전위험이 닥쳤을 때 근로자가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점을 명시해뒀다.

정부안에 비해 상당수 조항이 바뀌긴 했지만, 1996년 산안법을 개정한 이후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법이 고쳐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년 5월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 때도 하청 근로자의 산재를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됐으나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한 채 유야무야 됐다.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이날 관련 법을 통과시키면서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법은 태안화력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용균 젊은이로부터 다시는 이렇게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룬 법”이라면서 “산재사망률이 주요 선진국보다 2배 이상 높은 독보적인 1위 국가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 이상 하청업체의 근로자가 목숨을 담보로 불안한 일터로 향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위원회의 마음”이라고 전했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임이자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임이자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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