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100일간 입씨름만 하다가… ‘구태 국회’ 되풀이

입력
2018.12.27 04:40
수정
2019.01.03 09: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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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낙담한 듯 괴로운 표정으로 동료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낙담한 듯 괴로운 표정으로 동료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되는 시간인데…..”

지난 10월초 사립유치원 비리를 폭로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유치원 3법의 상임위 처리가 끝내 불발되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치원법은 이달 초만해도 예산안과 함께 처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예산안 협상이 끝난 지난 7일 밤 여야 원내지도부는 처리가 불발되자 국회에서 고성과 욕설을 주고 받았다. 자유한국당의 말 바꾸기에 민주당 지도부가 폭발한 것이다. 결의를 다졌던 민주당, 약속을 깨 머쓱한 한국당 모습에 늦었지만 이때만해도 유치원법은 금세 처리될 것 같았다.

기대와 달리 20일간 논의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연내 상임위 통과’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결단을 내리겠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국회를 보고 있으면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10월 초 박 의원이 유치원 비리를 건드렸을 때, 정치권은 ‘터질 게 터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논의-불발’을 반복하며 100여일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발목잡기로 일관한 한국당은 뻔뻔했고, 민심을 정치에 반영하지 못한 민주당은 무능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기대했던 바른미래당은 무기력했다.

정부ㆍ여당이 여론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던 11월만 해도 뭔가 바뀌는 듯 했지만, 민주당은 중재안을 내겠다는 한국당의 말에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국당은 ‘한유총 감싸기’란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심과 동떨어진 길을 걸었다. 결국 남은 건 패스트트랙으로, 330일 뒤 본회의 처리와 처벌 1년 유예 조항을 고려하면 비리 유치원에 대한 제재는 2년 뒤에나 가능하다. 정치권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비리 유치원들의 탈출구를 마련해 준 꼴이 됐다.

유치원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된다면, 공교롭게도 사회 비리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민생법안들이 ‘패스트트랙 1ㆍ2호’란 이름을 갖게 된다. 1호 법안은 2년 6개월 전 세월호ㆍ가습기살균제 사고를 담은 ‘사회적 참사법’이었다. 국민이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자고 외쳐도 민생법안의 발목을 잡는 정치권의 구태는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국회에 100일간 마늘을 갖다 놓는다고 정치권이 바뀔 수 있을까. 국회 논의 과정을 보면서 이 기대는 또다시 무너졌다.

정치부 류호 기자
정치부 류호 기자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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