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펜션 참변] 사고 보일러, 무자격자가 시공하고 영세업체가 관리

입력
2018.12.20 18:34
수정
2018.12.20 20:17
6면
구독

 시공 업체, 가스통 판매 자격만 

 가스시설시공업 등록 없이 영업 

 보일러엔 보험증서도 없어 

 위험한 LPG 보일러인데도 

 지자체ㆍ가스안전공사가 아닌 

 소규모 영세업체가 ‘양호’ 판정 

 “LPG 공급업체가 안전점검 책임 

 대부분 판매에만 신경쓰는 편 

 비눗물로 누출 확인에 그쳐” 

강원 강릉시 아라레이크 펜션에서 국립과학수사요원들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보일러를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강릉시 아라레이크 펜션에서 국립과학수사요원들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보일러를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설레는 대학생활을 꿈꾸던 서울 대성고 3학년 10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 펜션의 불량 보일러는 무자격 업체가 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영세업체가 액화석유가스(LPG)보일러 안전점검을 도맡는 등 총체적인 부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강원 강릉시는 아라레이크 펜션에 보일러를 시공한 업체가 가스시설시공업 등록 없이 영업을 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강릉에 위치한 이 업체는 가스통 판매 자격만 갖고 있었다. 2014년 건축주가 직접 구입해 해당 업체에 시공을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스보일러는 대리점이나 온라인 등을 통해 누구나 구입할 수 있지만 설치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가스시설시공업을 행정관청에 등록한 자가 할 수 있다. 또 보일러를 설치할 수 있는 ‘에너지 관리’ 자격증이 있어야 등록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해당 보일러는 또 시공자와 시공자 등록번호, 시공관리자 이름 등을 표기하는 시공표지판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물론 보험증서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펜션의 LPG보일러는 액화천연가스(LNG)에 비해 보일러 사고 위험이 높음에도 검증능력을 갖춘 기관이 아닌 소규모 업체를 통해 관리돼 왔다.

사고가 난 강릉시 저동의 펜션은 지난 6월 LPG시설 점검을 받아 ‘양호’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펜션 영업에 들어가기 한달 전이다. 그러나 점검을 한 업체는 지자체나 공기업인 가스안전공사가 아닌 강릉시내 소규모 공급업체였다. 더구나 이 업체는 직원이 2~3명에 불과할 정도로 규모가 영세했다.

해당 펜션은 앞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차례 안전점검에서도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았다.

현행법상 LPG 안전점검 책임은 공급업체에 있다. 공급자는 1년에 한 차례 이상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점검액이나 비눗물로 누수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마저도 문제가 있으면 신고나 시정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닌 시설개선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공급업체는 점검 결과를 지자체에 보고하고 2년간 보관해야 하는 의무규정이 있으나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6개월 마다 시설 안전점검을 받고 검침원이 직접 관리하는 도시가스와 달리 LPG는 공급 업체 대부분이 얼마나 싼 가격에 판매할 지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밀한 점검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해당 펜션에서도 ‘수박 겉핥기 식’ 점검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반면 가스안전공사는 LPG저장탱크와 외부 계량기 점검만 책임진다. 건물 외부는 공기업이, 내부는 가스공급업자가 맡는 구조인 셈이다. 인력과 장비를 갖춘 공기업과 자치단체가 영세업자에게 누출 시 다량의 일산화탄소 등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내뿜는 실내 보일러실 안전을 떠맡긴 셈이다.

문제는 강릉을 포함한 전국 중소도시의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펜션을 비롯한 농어촌 숙박시설과 노후주택 433만 가구 가량이 LPG를 연료로 쓰고 있다. 해당 펜션 점검을 맡았던 업체는 강릉시내 50곳이 넘는 업소의 보일러 관리를 맡고 있다. 강릉시민 김준호(57)씨는 “가스통을 바꿀 때나 간간이 비눗물로 누출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라며 “자칫 폭탄을 안고 사는 꼴이 될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강릉=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강릉=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강릉=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