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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실제 모습(사진 좌측)과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동상. 버드나무포럼 제공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또렷이 기억하는 날이다. 원래는 안중근 의사가 뤼순(旅顺) 감옥에서 순국한 지 꼭 100년 되는 날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민관 합동 수준을 넘어 한중일 3국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를 발굴하겠다며 붐 조성에 나섰다. 정부가 판을 키우자 안중근 이름 석자가 일약 동북아의 이슈로 떠올랐고, 베일에 가려졌던 오랜 염원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듯 열기가 고조됐다.

한낱 거품이었다. 일본이 유해 매장 장소를 순순히 공개할 리 없었다. 제대로 좌표를 정하지 못하니 아무리 발을 굴러봐야 헛수고였다. 더구나 일촉즉발의 안보정국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순식간에 뇌리에서 잊혀졌다. 퇴근 직전까지 종일 유해 발굴 기사를 쓰고서는 밤에 천안함 사건이 터져 부랴부랴 기자실로 뛰어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늦었지만 정부가 안중근 유해 발굴에 다시 속도를 낼 모양이다. 내년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의욕적으로 선보일 수많은 기념사업 가운데 단연 시선이 집중될 최고의 이벤트로 꼽힌다. 성역화 사업이 임박한 효창공원에서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안 의사의 가묘는 반드시 채워야 할 역사의 퍼즐조각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지필 곳은 딱 한군데 남았다. 뤼순 감옥 뒷편 동쪽의 나지막한 야산인 동산파(東山坡)다. 앞서 서쪽과 북쪽을 모두 뒤졌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제 아파트가 들어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다. 반면 동산파는 아직 건드리지 않은 곳이다.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인 탓이다. 그 덕분에 개발을 제한하면서 천만다행으로 상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빗장을 열지 않으면 모두 허사다. 그간 정부의 거듭된 발굴 요청에 중국은 남북이 함께 참여하라고 조건을 내걸었다. 안 의사 고향이 황해도 해주여서 북한도 지분을 갖고 있다는 논리이지만 실상은 남북을 나란히 세워 놓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정부는 내년 초 북한에 공동 발굴을 제안할 예정이다. 총부리를 겨누던 경계초소를 허물고 철책선을 넘어 기차가 달리려는 마당에 마다할 리 없어 보인다. 남북 공동 발굴은 2008년 이후 10여 년 만이다.

안타깝게도 안 의사 유해가 어디에 묻혔는지 적시한 사료는 아직 없다. 아니, 일본이 대외 유출을 차단하며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할 뿐이다. 이것도 중국이 걸고 넘어지는 부분이다. 하긴 다른 나라의 땅을 무턱대고 파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동파산을 뒤져야 하는지 명확한 증거를 들이대지 않는 한 유해 발굴은 또다시 희망고문에 그칠 수도 있다. 일본의 협조 없이는 요원한 일이다.

이처럼 안 의사 유해 발굴은 동북아 외교의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사이가 틀어져 더욱 거만해진 중국을 어떻게든 껴안고, 강제징용 판결로 반감이 극에 달해 눈을 흘기며 껄끄러운 일본과도 내키지 않지만 손을 잡아야 하는 일이다. 달콤한 수식어로 주가를 높이는 이미지 정치가 아니라 밍밍하더라도 반드시 성과를 내는 진중한 접근으로 역사의 공백을 메울 때다. 한중 관계가 최상을 구가하는 것으로 비치던 박근혜 정부 시절 안중근 기념관을 번듯하게 지어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호의에 감읍해 정작 중요한 유해 발굴에 물꼬를 트지 못한 건 쓰라린 패착으로 꼽힌다.

그나마 내년 3월 이전이 발굴의 적기라고 한다. 이후에는 풀이 무성해 애를 먹기 때문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1, 2월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회담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온통 관심이 쏠린다면 이번에도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허송세월은 앞서 두 번으로 족하다. 문재인 정부의 실력을 보고 싶다.

김광수 국제부 차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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