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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애등급제
[저작권 한국일보]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9_김경진기자
※세상에 무서울 것 없던 언론사 정치부 기자에서 세상의 모든 시선이 무서운 발달장애 아이 엄마가 된 지 10년. 한국일보는 매주 화요일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를 통해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현장의 생생한 문제들을 짚어봅니다.

더러 아들의 장애 등급을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지적장애로 2급을 받았지만 사실은 특급이에요”라고 말하곤 한다.

아들은 아직 말을 할 줄 모른다. 복잡한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옷 집어서 누나 방에 갖다 놔”라고 하면 옷을 손에 들고 어쩔 줄 몰라 한다. 게다가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옷 입고, 양치질 하는 등 일상생활의 당연한 활동에서마저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야만 한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1급이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지적장애 2급이라도 다 같은 건 아니다. 똑같이 지적장애 2급을 받은 어떤 아이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읽는다. 혼자서 놀이터에 가 친구들과 놀고 편의점에 들려 간식도 사 온다. 많은 일을 혼자서 거뜬히 해낸다. 이런 모습들을 계속 보면서 장애등급 심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사실 내 아들이 몇 등급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1급이면 장애인이고, 5급이면 장애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아들이 장애인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단 엄마인 내가 장애 등급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을 해온 건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장애 등급이라는 건, 그리고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가 달라진다는 건, 사람도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면 된다는 아주 비인권적인 발상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장애가 없는 우리들은 등급별로 나뉘어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직업에 따라, 학벌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정부에서 우리들에게 ‘등급’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를 제한한다면 아마 상당수는 발끈해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일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임에도 그동안 장애인은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등급’을 당연한 듯 받아왔다. 전 세계적으로 장애등급제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몇 개국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장애계에서는 꾸준히 등급제 폐지를 요구해왔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듯 정부에서는 내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순차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이야호! 왠지 내 아들도 이제야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도축된 가축에게 찍힌 보라색 도장처럼 내 아들에게 찍힌 2급이라는 딱지를 떼고 내년부터는 단지 지적장애로 인해 일부 사회적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뿐인 11살 어린이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등급제를 폐지한다고 하는데 장애계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토록 염원하던 일이 드디어 이뤄지는 순간인데도 “장애등급제를 ‘진짜’로 폐지하라!”며 장애인들이 목에 사다리를 걸고 거리 농성에 나섰다.

무슨 일일까. 대체 왜 그럴까. 장애등급 폐지에 따른 정부안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얼핏 배신감과도 비슷한 실망감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이건 ‘진짜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게 아닌 말 바꾸기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게다가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상황마저 눈에 그려진다.

하나씩 살펴보자. 기존에는 장애 정도에 따라 1~6급까지 등급을 매겼는데, 인간에게 등급을 매기는 게 비인권적이라며 등급을 없앴다. 대신 1~3급까지는 ‘중증’, 4~6급까지는 ‘경증’으로 이렇게 장애 정도에 따라 분류를 하기로 했다. ‘등급’에서 ‘정도’로 말이 바뀌고, ‘6개’에서 ‘2개’로 숫자가 바뀌는 것뿐 기존의 인식과 달라진 게 없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의학적 진단명으로 ‘장애’가 있을 뿐 아예 장애인을 특정한 기준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이었다. ‘등급’이나 ‘정도’에 따라 사회적 서비스를 달리 받는 게 아니라, 그 누구든 사회적 생활을 하는데 어떤 불편함이 있으면 그 부분을 지원하는 쪽으로 서비스가 맞춰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장애등급제 폐지의 진짜 이유가 되어야 했다. 이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장애가 있는 개인이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지를 알아볼 ‘도구’가 필요하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체계의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종합조사표는 장애계의 혹평만 들었다. 결과적으로 기존과 다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는 “종합조사표를 없애고 개인별 서비스를 지원하는 장기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정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당장 내년 7월부터 폐지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 새로운 시스템과 도구를 뚝딱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최소한 그러한 시스템과 도구를 만들기 위해 초석 작업을 하는 준비라도 시작했어야 했다. 기존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서비스 공급자 중심의 종합조사표를 수정하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눈앞의 등급만 먼저 없애려 하니 그로 인해 닥쳐올 혼란도 걱정이 된다. 기존에는 1~3급 장애인만 활동지원 서비스(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이동 등 일상생활을 돕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경증의 장애인이라도 서비스가 필요하면 받을 수 있게 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장애 등급이 아닌 ‘필요성’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발상이니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만 고민했기에 한계에 부딪힌다.

우리 아들도 작년부터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일이다. 지난주부터 아들은 남자 지원사 선생님으로 바뀌었는데 복지관에 신청을 하고 기다린 지 거의 1년 만에 연결이 되었다.

어쨌든 오래 기다려서라도 서로 맞는 지원사와 연결이 된 아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활동지원사들이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경증의 장애인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에서 중증장애인이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비스 이용자가 확대되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활동지원사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골라서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졌다. 중증장애인은 서비스 이용의 사각지대로 몰릴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장애계에서는 중증장애인의 활동지원을 맡을 경우 지원사의 시간당 단가를 올려 차별화 두는 방안을 계속 요구해왔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최중증장애인의 경우에만 시간당 1,000원 남짓 올랐을 뿐이다.

장애인콜택시(장콜)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1, 2급 장애인에게만 이 서비스가 허용되었는데(그나마도 지역별로 같은 장애라도 서비스 이용에 차이가 있다) 앞으로는 필요로 하는 이에게 확대된다. 아들은 매일 택시를 타고 하교하는데 그동안은 일반택시를 타고 다녔다. 내년부터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지면 이왕이면 가격부담이 적은 장콜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장콜 시스템은 지금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몰릴 시간에는 대기가 100번을 훌쩍 넘겨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는데 그 대상층이 확대되면 앞으로 ‘진짜 장콜이 아니면 안 될 일부 장애인’이 서비스 이용에 더욱 애를 먹을 수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느냐면 바뀐 제도를 뒷받침할 만큼의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도가 바뀌고 그에 따라 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나면 그 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한 2중, 3중의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예산이 들어가는 건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데 지난 8일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안에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요구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총액의 5.5%만 반영됐다.

제도변화를 뒷받침할 예산 없이 서류상으로, 공식적으로 “장애등급제는 폐지됐다”고 공언하면 이제부터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등급으로 낙인찍지 않는 인권적인 나라가 되는 것일까. 그토록 염원하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고 하는데 장애계에서 반발을 하고 “진짜로 폐지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그 와중에 국회의원 활동비는 올려서 통과시킨 금뱃지들에게 눈을 흘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류승연 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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