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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전자기기 위탁생산업체 대만 훙하이(鴻海) 그룹(폭스콘)의 경영철학은 철저한 고객 제일주의다. ‘인재는 네 번째, 관리는 세 번째, 설비는 두 번째, 고객은 첫 번째’란 궈타이밍(郭台銘ㆍ68) 회장의 지론에서 싹 틔운 기업방침은 훙하이가 전 세계 유력 기업을 원청 고객사로 둔 세계 최대 하도급 업체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의 공장’ 역할로 거대기업을 일군 궈 회장은 훙하이그룹을 ‘하이테크 기업’으로 키우기 위한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40여년 만에 거대기업이 된 비결

“이 디자인의 금속 프레임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까.”

아이폰4가 출시되기 전, 애플은 위탁생산업체인 훙하이에 독특한 디자인의 금속 프레임을 제조해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제품생산능력이 없었지만 궈 회장은 최대 고객사인 애플의 주문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위해 일본 공작기계제조사 화낙으로부터 대당 2만 달러(약 2,200만원)가 넘는 기기 1,000대를 구입했다. 애플의 주문을 만족시키기 위해 220억원을 흔쾌히 투자한 것이다. 아이폰4와 아이패드에서 액정 유리와 프레임 간의 연결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속 삭출용 기계 1만대도 새로 도입했다.

이 같은 철저한 고객중심주의는 훙하이가 7,500달러(약 842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 불과 40여년 만에 매출 1,580억달러(약 177조4,800억원ㆍ2017년 기준)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가장 저돌적인 최고경영자(CEO)’라는 평가를 받는 궈타이밍은 1950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3형제 중 첫째로 태어났다. 경찰 간부인 산시(山西)성 출신 아버지와 산둥(山東)성에서 자란 어머니는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접수하자, 1949년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했다. 타이베이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해양 관련 인재를 키우는 중국해사전과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1971년 해운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무역 업무를 보면서 해외시장과 여러 무역상품의 시장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미국에 TV플라스틱 리모컨을 납품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궈타이밍은 수요가 지속해서 늘고 있는 플라스틱에 장래성이 있다고 보고 1974년 훙하이 플라스틱을 차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 직원은 10명이었다. 자본금도 7,500달러였다.

하지만 포부는 컸다. 회사 이름부터가 그랬다. 훙하이(鴻海)는 기러기 홍(鴻)에 바다 해(海)를 합친 말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 역사서인 통감절요에 나오는 ‘홍비천리 해납백천(鴻飛千里 海納百川)’에서 따왔다. ‘기러기는 천리를 날고 바다는 백 개의 강에서 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80만명을 고용(2017년 기준)하고 있는 훙하이 그룹의 모태가 됐다.

훙하이 플라스틱은 흑백 TV 채널을 돌릴 때 들어가는 회전 손잡이를 제작해 납품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일쇼크가 터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산유량 감축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플라스틱 제조 비용 역시 크게 상승했다. 힘겨운 시기였다.

◇상인에게 조국은 없다

궈타이밍은 도전을 즐겼다.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는 것을 보고 PC와 다른 전자기기를 연결해주는 커넥터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1977년 일본에서 최신 주형 설비를 들여오는 모험을 단행, 대량생산능력을 갖췄다.

틈틈이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1980년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최고의 게임기 제조회사인 미국 아타리가 비디오게임기(아타리 2600)의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 게임기가 ‘대박’ 나면서 훙하이도 하루에 1만개 이상의 커넥터를 납품했다. “전자제품 제조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생각한 궈타이밍은 회사 이름을 훙하이정밀공업으로 바꿨다.

4년 뒤 최초 거래처였던 아타리가 파산하자 궈타이밍의 홀로 미국에 건너갔다. 미국 컴퓨터와 게임기 회사를 사전 약속 없이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산업 스파이로 의심을 받아가며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다녔다. “미국 대중음식점 데니스의 메뉴를 다 외우고 다녔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질 좋고 싼 부품의 확보는 미국 회사로서도 제품 경쟁력에 필수 요건이었기 때문에 궈타이밍의 ‘무모한 도전’은 또다시 성공을 거뒀다.

중국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을 빠르게 포착해 본토에 1988년 광둥성 선전에 당시 중국 최대 규모 공장을 지은 두 번째 도전은 훙하이정밀공업이 거대 기업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됐다. 덩샤오핑(鄧小平) 주도로 시작한 개혁개방이 한창 이뤄지던 시기였지만 대만 기업들은 적대적 관계인 중국에 투자하길 꺼렸다. 그러나 “상인에게 조국은 없다. 시장이 조국이다” “고급 기술이든 저급 기술이든 돈을 버는 게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해 온 그에게 저임금과 값싼 토지, 풍부한 노동력은 꽤 매력적이었다.

궈타이밍은 1996년 컴팩에 PC 본체 납품을 시작으로 애플 노키아 소니 델 등 전 세계 주요 IT기업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며 급성장했다.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으면서도 절대 자체 브랜드를 만들지 않은 ‘음지의 조력자’ 훙하이와 합작하길 선호했기 때문이다.

◇샤프ㆍ도시바 PC사업 인수 등 사업 확장 박차

훙하이가 최근 사업을 다각화하며 빠르게 양지로 손길을 뻗치고 있다. 궈타이밍은 “훙하이 그룹은 단지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아니다. 네트워크와 빅데이터까지 갖춘 IT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히면서부터다.

2015년 6월 궈타이밍은 “로봇은 훙하이가 전략적으로 발전시키는 중점 분야”라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마윈 중국 알리바바그룹 회장과 함께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감정인식 로봇 페퍼의 세계 진출을 위해 3사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6년에는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 샤프를 약 8조원에 인수했다. 전자업계에선 “누구나 다 아는 샤프란 브랜드와 핵심 기술을 동시에 거머쥐게 됐다”고 평가한다. 같은 해에는 전직 노키아 임원들이 세운 HMD글로벌과 공동출자로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노키아 피처폰 사업도 사들였다. 훙하이정밀공업은 피처폰 디자인과 생산, 사후 서비스를 담당한다. 올해 6월에는 훙하이정밀공업의 자회사인 샤프가 도시바의 PC사업을 인수했다. 디스플레이와 전기차 사업에도 진출했고, 통신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훙하이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선 건 위탁생산방식의 낮은 수익성과 수익원 편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훙하이의 매출의 40%를 애플 제품 생산이 담당한다.

◇막말 구설수…수익성 악화 우려 커져

궈타이밍의 카리스마 리더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정에 임원을 불러서 업무 보고를 받는가 하면, 회사 곳곳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놓았다. 2014년 대학생과 시민단체가 국민당의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안의 상임위 기습 통과에 반대하며 입법원(의회)을 점거하자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중요 인재와 정부의 에너지,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력을 쓸데없이 낭비하게 한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앞서 2010년에는 업무 강도에 직원들의 자살이 이어지자 당시 100만명의 직원을 빗대 “100만 동물을 관리하는 건 항상 골치 아프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궈타이밍은 올해 7월 “향후 5년 안에 생산직 노동자의 80%를 로봇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고성장을 기록하던 훙하이정밀공은 최근 ‘성장 정체의 덫’에 빠졌다. 아이폰의 판매 부진으로 내년 3조3,000억원의 비용 절감 계획을 세웠다. 비(非)기술직 직원의 10%도 감원한다. 맥스 팽 델 전(前) 아시아 구매본부장이 “당신이 궈타이밍과 같은 업계에 있다면 당신 뒤를 그가 쫓고 있다는 걸 항상 의식해야 한다”고 훙하이의 기업 분위기를 비꼬았다. 저돌적인 그가 어떤 도전으로 또다시 위기를 극복할지 IT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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