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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색을 나타내는 다양한 형용사가 있다. ‘빨갛다’ ‘파랗다’ ‘까맣다’ 등 기본 색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고, 여기에 접두사를 붙이거나 모음을 바꿔 어감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새빨갛다’ ‘시퍼렇다’ ‘시커멓다’ 등이 그런 말이다. 이런 말은 당연히 색을 표현하는 데 쓰이지만, 문맥에 따라 독특한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아마도 색과 관련한 말이 기본 어휘에 속하다 보니 의미가 많이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먼저 ‘새빨갛다’의 경우는 ‘새빨간 거짓말’과 같이 쓰여 아주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나타낸다. 이럴 때는 항상 ‘새빨간’이라고만 쓰고 ‘거짓말이 새빨갛다’와 같이 쓰지는 않는다. ‘파랗다’ 관련 말은 더 흥미롭다. 아주 젊은 경우에 ‘새파랗게 젊다’ ‘새파란 젊은이’라고 흔히 쓰지만 ‘파랗게 젊다’ ‘시퍼런 젊은이’라고는 쓰지 않는다. 반면 “부인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딴 여자를 만나다니”와 같은 문장에서는 ‘시퍼렇게’ 대신에 ‘새파랗게’나 ‘파랗게’는 잘 쓰지 않는다. 형태도 주로 ‘시퍼렇게’로 쓰여서, ‘부인이 시퍼렇다’ ‘시퍼런 부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처럼 ‘새파랗다’나 ‘시퍼렇다’가 다소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반면 ‘푸르다’는 ‘푸른 꿈’ ‘푸른 희망’ 등과 같이 긍정적 맥락에서 쓰이는 것도 특이하다.

서로 반대말로 볼 수 있는 ‘하얗다’와 ‘까맣다’는 더 흥미롭다. ‘밤을 하얗게 새우다’ ‘약속을 까맣게 잊다’ 등과 같이 쓰이는데, 이때 두 문장에 쓰인 ‘하얗게’와 ‘까맣게’는 모두 ‘완전히’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하얗게’와 ‘까맣게’를 서로 바꾸어 쓸 수는 없다. 이는 ‘하얗다’와 ‘까맣다’의 본래 뜻이 여전히 영향을 주기 때문인 듯하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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