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은 국민’ㆍ‘화내는 일본’ 사이 곤혹스런 외교부

입력
2018.11.29 22:49
수정
2018.11.3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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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징용배상 2차 판결일 2차관이 日대사 불러 면담

대변인 “계속되는 日과민반응 매우 유감… 자제 촉구”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과 이날 이뤄진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등에 대해 약 50분 간 논의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과 이날 이뤄진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등에 대해 약 50분 간 논의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예상됐지만 불가피한 악재들에 외교부가 곤혹스럽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잇따르고 이에 따라 자국 기업 보호에 필사적인 일본 정부의 거친 대응도 계속 수위가 유지되면서다. 한일 관계를 고려하면 진화(鎭火)가 급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국민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터에 침묵만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ㆍ유족 5명과 강제징용 피해자 6명이 각각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한국 대법원이 원고 승소를 확정한 29일 오후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를 청사로 불렀다. 이미 예정된 면담이었고 전반적 양국 관계 현안 논의가 목적이었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지만,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등에 대한 일본 측 과격 발언이 멈추지 않자 이에 항의하고 삼가 주기를 당부하기 위한 자리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분위기다.

이날 선고 결과가 신일철주금이 피고였던 지난달 말 재판 때와 같은 결론인 것처럼 일본 측도 일관적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장관은 판결 직후 담화를 내고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에 분명히 반(反)하고 일본 기업에 부당한 불이익을 입히는 것일 뿐 아니라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구축해 온 한일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엎는 것”이라며 “매우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측은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 시정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외무성의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사무차관은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판결에 항의했다.

우리 정부가 바라는 건 파장의 최소화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우리 사법부 판결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자제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우리 사법부 판결과 관련, 문제의 근원을 도외시하고 이번 일을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부각하는 건 문제 해결은 물론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여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노 대변인은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 치유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밝혔다. 앞서 27일에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재단 해산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갖고 오지 않는다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일본에 와도 곤란하다”고 고노 장관이 말했다는 전날 일본 공영방송 NHK의 보도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가,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외교 관계를 관리하는 외무대신으로서 비외교적인, 또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분간 한일 관계의 앞날은 어둡다. 앞으로도 비슷한 재판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제소된 일본 기업이 70여곳이다. 다만 우리 측 대응 방안이 정해질 때까지 일본 측은 지금 수준의 경고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할 공산이 크다. 나가미네 대사는 약 50분 간의 면담을 마친 뒤 외교부에서 나가는 길에 취재진이 한국 정부가 일본의 과민 반응에 유감을 표명한 데 대한 생각을 묻자 “일본 정부의 입장은 고노 (외무)대신 담화 그대로”라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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