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차에 화염병 던진 70대 “내 주장 안 들어줘 범행”

입력
2018.11.27 16:45
수정
2018.11.27 20:18
8면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차량에 화염병을 투척한 남모(오른쪽)씨가 27일 오전 체포된 뒤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출근차량에 화염병을 투척한 남모(오른쪽)씨가 27일 오전 체포된 뒤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3부 요인(국회의장ㆍ대법원장ㆍ국무총리) 중 한 명인 대법원장이 출근길에 화염병 테러를 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일어난 사건이다. 초유의 ‘화염병 테러’를 저지른 남모(74)씨는 재판에서 패소하자 법원에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조사됐다.

27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강원 홍천군에서 돼지농장을 하던 남씨는 농장의 친환경인증과 관련한 다툼 때문에 2년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남씨 농장은 2007년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다, 2013년에 사료에 문제가 생겨 인증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낸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1ㆍ2ㆍ3심 모두 패소했다.

그는 1심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2ㆍ3심에서는 대리인 없이 혼자 소송을 진행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달 16일 남씨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관련 소송 비용도 모두 남씨가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대법원이 별도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이 경우 패소 사유가 적히지 않아 왜 졌는지도 모르게 소송이 종결돼 과거부터 소송 당사자의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씨는 경찰 조사에서 “민사소송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내 주장을 받아주지 않아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이 사태로 법원 신뢰가 땅에 떨어진 시점에서 발생한 만큼 사법불신 심화와 모방범죄로 이어지지나 않을 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어떤 이유로도 법관에 대한 테러는 있을 수 없는 야만적인 일”이라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대법원장을 공격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사법부 신뢰가 떨어진 시점에 일어난 일인 만큼 법원도 겸허한 마음으로 좋은 재판을 하도록 옷깃을 여몄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 고위법관은 “요즘 하도 법원에 대한 비판이 많으니 그런 평판도 작용할 수 있었으리라 본다”며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에 대한 습격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10년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차량에 달걀을 던진 사건 이후 8년 만이다. 범위를 3부요인으로 확장하면 1991년 6월 정원식 당시 총리가 외국어대에서 학생들에게 밀가루 세례와 발길질을 당했고, 2009년 정운찬 총리는 세종행정도시 철회 문제로 연기군을 찾았다가 달걀 세례를 당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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