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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외치던 통신업계 ‘뒷북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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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수십만명이 안전과 일상이 며칠간 마비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정보통신 관련 시설 안전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됐다. 정부와 통신업계는 부랴부랴 전국 통신구 점검이나 소방시설 확보 같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뒤늦은 ‘반성문’은 지하 통신구 관리가 허술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내놓은 대책마저 그동안 부실했던 관리시스템을 고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는 26일 전국 통신 시설 특별점검 및 상시점검을 강화하고, 의무설치 대상이 아닌 D등급 통신구에도 소방장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현 소방법은 전력ㆍ통신사업용 지하구 길이가 500m 이상이면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아현지사 통신구는 150m 정도라 소화기 1대만 비치됐는데, KT에만 이런 통신구가 수백 개에 이른다.
2000년 2월 18일 서울 여의도 전기ㆍ통신 공동구 화재로 3일간 통신장애를 겪은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고 발생시 피해 범위가 넓어 중요한 통신구 80곳을 A~C등급으로 지정했다. 이후 A~C등급은 직접 점검하고 있지만, D등급 835곳은 민간사업자에게 일임했다. 24일 화재가 발생한 아현지사 통신구는 D등급이다.
민간이 관리하는 D등급 통신구라도 A~C등급 통신구와 연결되고, 도로나 지하철을 따라 매설된 공동구(통신ㆍ전력ㆍ가스관이 같이 지나가는 구역)와도 이어진다.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통신구에는 사람이 작업할 수 있도록 조명 등이 설치됐다.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찰, 소방,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기안전공사가 합동으로 진행한 2차 감식 결과 방화나 담배꽁초 등 외부요인으로 인한 실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환풍기를 비롯한 잔해물에 대한 국과수 감정을 시행하고 통신구 복구 시 수거되는 잔해를 통해 최종 화재 원인과 발화지점을 확인할 예정지만, 화재 원인이 누전 등 전기적 요인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후한 다른 수백곳의 D급 통신구에서도 같은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통신설비업계 관계자는 “아현지사는 깊이가 6m 정도라고 하는데, 땅속 수십m에 위치한 통신구가 있고 지은 지 오래된 곳도 꽤 많다”며 “50m마다 방화문이 있어도 지하라는 특성상 한번 불이 나면 인근 공동구로 번질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긴급 현안 보고에서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도 “땅속 선(線)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야 하는데, 지방은 정말 엉망이라 선을 아무 데서나 따서 붙인다”며 “5G 시대의 배 속에 기생충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와 긴급 대책 회의를 갖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연말까지 통신망 안전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모든 통신구 실태점검과 재해 때 통신 3사의 기지국 상호지원 등이 대책에 담길 예정이다. 회의에서 유 장관은 “통신은 공공재”라고 강조했지만, 그간 전국 통신구 점검을 개별 통신사에 맡긴 채 관리에 소홀했고 재난 시 통신망 공동사용 등에 대한 규정조차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과가 없었다.
통신사들도 성장과 수익만 추구하면서 안전시스템 구축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KT새노조는 성명을 통해 “경영진은 아현지사가 D등급이라 백업체계가 없었다고 했는데, 장비를 아현으로 집중화하는 과정에서 설비 최적화란 명목 아래, 유휴 동케이블마저 빼서 팔아먹을 정도로 수익에 집착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를 통신 안전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백민호 강원대 재난관리공학전공 교수는 “민간이 운영하는 통신구 관리체계를 표준화해 일정 수준까지 끌어 올리는 작업이 꼼꼼히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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