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불공정 임금 분배, 소득 격차 주범
정규직 과보호가 고용 창출 막아
기득권 양보 없이 일자리 해결 난망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 핵심은 임금 격차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0% 남짓인 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의 고임금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임금은 정체 상태거나 오히려 줄고 있다. 노동시장 내 극심한 임금 격차를 해소하지 않는 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불평등 해소도 요원하다. 사진은 1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민주노총 제공

소득 격차가 또 벌어졌다. 3개 분기 연속이다. 취약계층의 소득 증가를 통한 불평등 해소는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다. 재정을 쏟아 부어도 가난한 사람만 계속 가난해지니 답답한 노릇이다. 소득 격차의 주범은 임금이다. 올해 3분기 소득 하위 20% 계층의 근로소득은 1년 전보다 22.6% 급감했다. 반면 최상위 20%는 11.3% 늘어났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따른 단기 일자리 감소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주장대로 최저임금 인상을 유예하면 소득 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임금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이리 심하진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이식한 미국식 성과주의 영향이다. 미국 최고경영자(CEO) 연봉은 1965년 일반 직원의 20배 수준에서 2013년 296배로 치솟았다. 한국 CEO 연봉도 일반 직원의 수십~수백 배에 달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표현을 빌리면, ‘미국과 가장 가깝게 닮아가는 나라’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0% 남짓인 고임금 정규직과 나머지 90%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상ㆍ하위 10% 격차가 OECD 회원국 중 2위다. 1년 새 임금이 11.3% 증가한 소득 5분위(상위 20%)는 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이 주력이다.

이런 의문이 든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가. 직원 급여 100년치를 연봉으로 챙기는 사장님은 100배 이상 성과를 내는 걸까.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이 생산성과 무관한 직업 안정성과 고임금을 유지하는 게 정의로운 건가. 급여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한다면, 그들의 철밥통이 유지되는 까닭도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서울을 방문했던 일본 경제전문가 아오시마 야이치(52)는 커피 등 생활물가가 일본보다 10~30%나 비싸 놀랐다고 한다. 그는 오랜 기간 원화 약세를 통한 수출 주도형 경제의 부작용으로 봤다. 정부의 환율 방어로 수출기업과 일부 고소득층은 혜택을 누렸지만 이 때문에 수입물가가 비싸져 국민 삶이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그의 지적대로 대기업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환율 방어, 저금리, 세제 지원 등 국가의 총력 지원이 있었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을 정당한 성과 보상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들 몫에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포함돼 있다. 원청업체의 독점적 지위라는 불공정 경쟁의 혜택도 무시하기 어렵다.

홍장표 청와대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이 최근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줄여 협력업체 임금 인상을 지원하자”고 했다. 그는 대안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사업을 진행해 이익이 나면 공유하는 ‘협력이익공유제’와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협력기업의 임금을 지원하는 ‘연대임금제’를 제안했다. 보수 언론이 즉각 ‘공산주의식 발상’ ‘반(反)시장경제 포퓰리즘’ ‘세계에서 유례 없는 법’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대통령과 장ㆍ차관 연봉부터 깎으라’는 감정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맞는 지적일까.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및 대기업의 대졸 초임을 10~20% 줄여 고용 여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 대기업 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특정 직군 고임금을 억제하고 협력업체와 이익을 나누는 제도는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도 최근 ‘연대임금제 도입’을 천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기업 정규직의 과보호가 고용 감소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경직된 임금체계와 갈등적 노사관계가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린다는 분석이다. 정규직 임금 상승은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인하나 비정규직 희생으로 전가된다. 노동시장 내 극심한 임금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고용 창출은 난망이다. 임금노동자의 90%가 적절한 보상을 못 받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이런 구조에선 권력화된 대기업ㆍ공공부문 정규직의 철밥통도 언젠가 끊어질 것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