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법관들 탄핵하라” 일선 판사 6명 공개 제안

입력
2018.11.13 18:01
수정
2018.11.13 23:3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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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원 소속… 법관대표회의 발의 촉구… 법원 찬반 극렬하게 엇갈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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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법관들을 국회 차원에서 탄핵해야 한다는 요구가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간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법관 탄핵을 주장한 적은 있지만, 현직 법관들이 집단으로 실명을 내걸고 동료 법관을 탄핵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는 처음이다. 탄핵 요구를 전해들은 다른 판사들의 반응도 극렬하게 엇갈렸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인 권형관ㆍ박노을ㆍ박찬석ㆍ이영제ㆍ이인경ㆍ차경환 판사는 전날 ‘전국법관대표회의 결의안 발의 제안’이란 제목의 글을 대구지법 법관대표 3인에게 보내며, 이 제안을 1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발의해줄 것을 제안했다. 안동지원 판사들의 제안이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려면 내규에 따라 회의 당일까지 법관대표 9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들은 “현행 형사법상 범죄 행위에 포섭(포함)되지 않는 재판 독립 침해행위에 대해 아무런 역사적인 평가 없이 넘어갈 수 없다”며 “오랜 고민 끝에 명백한 재판 독립 침해행위자(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 절차 개시 촉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안동지원 판사들은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이 특정 재판에 관해 △당사자가 아닌 정부 관계자와 비공개적으로 회동해 재판의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를 작성하는 등 자문을 해준 것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방향의 판결 주문을 요구하거나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 등을 재판 독립 침해 행위로 봤다.

이들 판사들은 “재판부가 사건 처리에 관해 동료나 선배 법관에게 조언을 구하고 참고할 수는 있다”면서도 “합당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의 조언이 아니라 ‘법원의 위상 제고에 유리한지 여부’나 ‘행정부와의 원활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면서 특정 사건의 재판에 관해 조언이나 요청을 하는 건 어떤 선의의 의도나 명분을 가져다 대더라도 헌법상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못박았다. 이어 “형사 절차의 진행과는 별개로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사후 교정 절차인 탄핵 절차 진행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들의 결의안이 공개되자 법관 사회는 하루 종일 술렁였다. 한 고법의 부장판사는 “검찰의 일방적 피의사실 공표밖에 나온 게 없는데 이것만 가지고 동료법관을 탄핵하자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한 지법 판사 역시 “많은 판사들이 이 상황에 대해 울분을 갖고 있고, 나 또한 이런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탄핵은 국회가 결정할 일인데 우리가 나서 동료 법관의 법복을 벗기라고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법농단 수사가 영장기각 사태로 가로막힌 상황에서 탄핵만이 실질적 대안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지역 지법의 한 판사는 “유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탄핵으로 엄단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판사들의 집단적 탄핵 요구는 국회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을 주도하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 여러 사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건이 정치권 내 법관 탄핵을 촉구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과거 국회가 두 차례 법관탄핵을 시도했지만, 탄핵소추안이 실제 가결된 적은 없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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