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사자성어로 풀어낸="" 문희상의="" 정국="" 관전평="">
[저작권 한국일보] 문희상 국회의장이 6일 국회의장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2018-11-06(한국일보)

문희상 국회의장은 외모 때문에 삼국지의 장비, 판관 포청천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머리 회전은 조조 이상으로 평가 받는다. 과거 의원회관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봉숭아학당’식 정국 해설을 하곤 했는데, 그의 탁견을 따라올 정치인이 없었다. 특히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로 정치 현안을 설명하는데 탁월한 문 의장은 6일 인터뷰에서도 평소 그가 즐겨 쓰는 사자성어를 꺼내며 최근 정세를 풀어냈다.

□ 줄탁동기(줄(口+卒)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과 밖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 원래 중국의 민간에서 쓰던 말인데 송나라 때 선종의 대표적 불교서적인 벽암록에 등장하면서 불가의 주요 화두가 됐다.)

문 의장은 협치의 실천을 설명하면서 ‘줄탁동기’를 꺼냈다. “협치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가 대의명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연합을 제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당에 총리를 제안하는 게 모두 대의명분을 보고 한 것이다. 대의명분이 없을 때는 국민들이 먼저 야합인 것을 알아 챈다. 두 번째는 투명한 절차다. 절차적 정당성도 없이 ‘장관 자리 하나 줄 테니 정치 현안을 맞바꿉시다’라는 식으로 밀실 거래를 한다면 역시 국민이 가만 두지 않는다. 세 번째는 타이밍. 아무리 좋은 정책도 때가 무르익고 안팎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채비도 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협치를 하겠다고 미리 쪼면 공기가 들어가 병아리는 죽고 만다. 마찬가지로 협치도 안팎과 좌우가 서로 조응하는 그런 환경에서 가능하다.”

□ 만절필동(萬折必東: 강물이 일만 번을 꺾여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라도 원래 뜻대로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를 보고 그 까닭을 묻는 자공에게 공자가 "일만 번이나 꺾여 흐르지만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니 의지가 있는 것과 같다(化其萬折必東, 似志)"고 설명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문 의장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북한은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왔고 ‘만절필동’처럼 한반도 평화는 우여곡절은 있어도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용장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지장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가슴형, 즉 공감형 리더십이 강한데 한 분은 격정적이고 한 분은 부드러워 공감대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남북관계만 놓고 보면 김대중 1기와 노무현 2기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은 문재인 3기는 태어날 때부터 복 받은 형국이다. 출발선에서 우월한 형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남북문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만개할 것”이라는 게 문 의장의 전망이다.

□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 정치를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民信)’로 규정하는 공자에게 자공이 ‘어떤 순서로 포기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군대와 식량을 순서대로 이른 뒤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대답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문 의장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모토인 ‘무신불립’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안보, 평화라는 측면에서 잘 하고 있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 경제를 잘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조금 다르다. 촛불혁명의 요구에 따라 정의롭게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인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심리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의 점수가 덧셈이 아니라 곱셈의 논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해서 나누는 게 아니라 곱셈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라도 0점이면 0점인 거다. 그래서 골고루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대통령이 협치를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