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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인도 북부 라다크 마을에 체류하면서 지역화 운동을 시작한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가운데)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곳에서 찾았다. 남해의봄날 제공

책은 스웨덴 출신의 지역화 운동의 선구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72)가 썼다. 저자는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 라다크가 세계화로 외부에 개방되면서 겪는 삶의 변화를 소개한 ‘오래된 미래’로 유명하다. 1975년 라다크에서 체류하면서 지역화 운동을 시작한 그는 40여 년 간 줄곧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반대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지역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책은 그가 주장해온 지역화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지역 경제 공동체 회복에 대한 핵심 메시지를 압축해 해외에서 먼저 발간된 것을, 한국 상황에 맞는 내용을 곁들여 새로 펴냈다.

책은 내용에 앞서 출판 과정부터 흥미롭다. 한국판을 펴낸 출판사가 이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출판을 맡은 ‘남해의봄날’은 경남 통영에 있는 소규모 출판사다. 서울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고 경쟁적으로 살아왔던 정은영 대표가 건강 악화로 요양 차 내려갔던 통영에 터를 잡고 꾸렸다. 그는 이곳에서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정 대표는 “대도시에서 살아 남으려 기를 쓰고 살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라며 “서울에서 살면서 느꼈던 불안과 초조함이 싹 가시면서 삶이 기뻐졌다”고 했다. 남해의봄날은 지역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나 다양한 삶의 가치를 기록하는 책을 주로 만든다. 저자가 주장해온 지역화의 좋은 본보기인 셈이다. 3년 전 국내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서 정 대표가 우연히 저자와 만남을 가진 것이 계기가 돼 출판을 맡게 됐다.

책의 내용은 간단 명료하다. 대도시, 대기업, 거대자본 등이 중심인 사회에서 벗어나 살고 있는 마을,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좀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자는 얘기다. 단지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저자가 귀 따갑게 들어왔던, 지역화를 둘러싼 우려에 대한 답도 담았다. ‘지역화는 국제 협력의 시대를 거스르는 고립주의 아닌가’, ‘세계화가 빈곤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은가’, ‘도시에 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은가’ 등이다. 한국판에만 들어 있는 4부에는 출판사가 한국 상황에 맞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독자 대신 묻는다. ‘한국에서 지역화를 이루려면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는 무엇인가’, ‘대도시에 살면서 지역화를 실천하는 법은 없나’ 등에 대해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넣었다.

로컬의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ㆍ최요한 옮김
남해의봄날 발행ㆍ184쪽ㆍ1만6,000원

한국은 이미 세계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상 기후, 고용 불안, 빈곤, 폭력 사태, 차별 등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책은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2011년 5월 문을 열면서 새로운 실험을 했던 남해의봄날은 35권의 책을 내며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정 대표는 “환경이 바뀌면서 삶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처럼 당장 도시를 떠날 순 없더라도, 지역화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역화는 경제를 인간적인 규모로 되돌리는 것인데, 개개인의 사회적ㆍ생태적 행동의 규모를 줄이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더 쉽게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고, 이웃에 관심을 높이는 일부터 해보기를 권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남해의봄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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