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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의 달인’ 문희상 국회의장
[저작권 한국일보] 문희상 국회의장이 6일 국회의장실에서 김정곤 논설위원과 만나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협치의 달인으로 불리는 문 의장은 “대통령은 물론 여야도 협치에서 시작하라는 게 작금의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오대근기자 /2018-11-06(한국일보)

문희상 국회의장의 정치철학은 협치다.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취임할 때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에 미달한 가운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야당과 공존해야 하는 다당제 현실에서 협치는 문 의장의 숙명이나 다름없다.

취임 4개월 동안의 행보도 협치의 연속이었다. 취임 직후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들과 회동을 정례화한 데 이어 여야 5당 대표들과는 ‘초월회’라는 정례 모임 자리도 만들었다. 아직까지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없지만 문 의장은 “’청청여여야야언언’의 정신이라면 협치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청와대답게, 여야와 언론이 또 각자 제 역할을 해낸다면 정치가 바로 선다는 의미다.

그런 차원에서 문 의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 주도로 이끌어낸 여야정 협의체의 성과에 크게 고무돼 있다. 그는 “첫 번째 행사에서 그 정도 합의면 대성공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면 실적이 크게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6일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문 의장을 만나 최근 정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_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여야정 협의체 결과를 60점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나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 문제 등 핵심 사안을 우회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핵심 쟁점은 서로 다툼이 있다는 의미다. 의견 조율이 어려운 사안까지 억지로 한다면 다음 번 기약이 없다. 절충하면서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시작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치인 거다.”

_그 동안 막무가내의 야당을 외면하던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바꾼 것인가.

“대통령이나 야당 모두 필요성을 인정한 결과라고 본다. 어찌 보면 협치를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국민 여론이 만들어낸 측면도 있다. 대통령이나 야당이 이제는 타협을 하라는 게 작금의 시대정신인 셈이다.”

_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특별재판부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강하다.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도 제안돼 있지만 3권 분립 위배 소지가 있다는 지적으로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새로운 재판부를 만드는 차원이라면 위헌 시비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 게 아니다. 반민특위처럼 헌법을 건드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3권 분립 문제는 매우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찬반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는 주장들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핵심적인 요소가 돼야 한다.”

_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에도 야당은 반대하고 있다.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낼 비책이 있다면.

“국회의장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2%가 비준 동의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판문점 선언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라는 법제처의 유권해석까지 나온 터라 국회가 따라야 한다. 해당 상임위인 외통위에 상정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게 맞는 절차다. 상임위 논의를 못하고 표결로 부결된다 해도 직권 상정 대상은 아니다. 의장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_선거제도 개편 논의할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가동됐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 도입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진척이 어렵다.

“현행 선거제도는 실제 얻는 표심을 왜곡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25%를 득표하고도 경기도 의회 의석을 단 1석만 얻었다. 과거 2006년 지방선거 때 20%를 득표한 열린우리당이 경기도 의회에서 단 한석도 차지 못한 전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가 불리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현재 지지율과 정치 상황이 영원할 수 없다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보면 기우에 불과하다. ”

_연동형 비례제 도입에는 의원 정수 확대 문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부득이하게 의원 정수가 늘어나는 경우엔 세비를 현재의 총액 내에서 동결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만 여야가 합의하면 역사적으로 정치개혁을 가장 많이 한 국회로 기록될 것이다.”

_개헌도 20대 국회의 현안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 발의안이 무산된 뒤로 개헌 추진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게 문제다.

“대통령은 국회가 합의하면 받겠다고 하면서 국회에 공을 넘기고 빠져 나갔다. 정치적으로 아주 고단수다. 이제 청와대를 탓할 이유도 없어졌고 책임은 국회로 넘어왔다. 사실 개헌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국회다. 지금 같은 대치가 풀리지 않으면 촛불 민심을 제도화하는 천재일우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매우 우려스럽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정치적 멘토로 삼고 있는 문 의장은 DJ 필생의 과업인 한반도 평화에도 천착하고 있다. 그는 4개월 남짓 동안 국제의회연맹 회의, 유라시아 국회의장 회의 등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세계 각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국제 의회외교 무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 의지를 물려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전환기적 시대를 맞아 신뢰받는 복덕방 역할을 제대로 해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_문재인 정부 들어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 논의에 가속도가 붙었다. DJ의 평화 프로세스와 비교하면 어떤가.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관계와 북핵 협상을 따로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었다. 핵과 미사일은 6자회담 등 국제사회가 풀고 남북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세월 속에서 뒤죽박죽 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슬쩍 둘을 합친 거다. 판문점선언, 평양선언에서 비핵화를 합의문에 넣으면서 전혀 차원이 다른 고차방정식이 됐다. 이제 핵마저도 민족의 운명이 달린 문제가 된 것이다.

_미국에선 남북관계가 비핵화를 추월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예로부터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고 했다. 호랑이처럼 주도 면밀하게 주변을 살피되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가지 않으면 비핵화 문제도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바탕은 한미, 나아가 한미일 공조가 돼야 한다.

_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의 전망이 엇갈린다. 지금까지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지만 미국 중간선거를 계기로 주춤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협상에 능수능란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유능한 복덕방을 만나 속도를 내고 있다. 집을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복덕방을 통해 거래하는 것처럼 북미 모두 문 대통령이라는 최고로 신뢰할 수 있는 복덕방을 만난 셈이다. 더구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임기 말에 발동이 걸리는 바람에 제대로 힘을 받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임기 초라서 동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돼 있다.”

_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데 중간선거로 다소 의욕이 꺾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트럼트 대통령은 재선 성공을 위해 업적 카드가 필요하다. 중간선거에서 북한 비핵화 카드를 고려했겠지만 이번에는 어차피 상원은 이기고 하원은 지는 판이라서 아껴 둔 것으로 보인다. 재선 때 쓸 카드로 미뤄 둔 것이다.”

한반도 평화 바람을 타고 남북 국회회담도 추진되고 있다. 문 의장은 “회담 날짜와 장소는 고위급회담에서 정해질 것”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 연내 남북 국회회담 성사로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마무리짓고 싶은 생각”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남북관계 일정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무리하게 밀어붙일 수 없다는 취지로 보였다.

_한국당까지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남북 국회회담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연내 답방과 연계되면서 일정 조율이 복잡해진 것 아닌가.

“스위스에서 북한의 리종혁 단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전의 국회회담이 경직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움직임이라면 이번에는 남북 정상 간 만남이 일상화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지원하는 측면이 크다. 국회회담 시기나 장소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_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의 초청 방식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가 결례를 한 것인 가.

“청와대는 입법부 수장에 대한 예우를 갖춰 요청을 한 게 맞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하고 싶었지만 국회의장이 나선다면 어떤 형태라도 특별수행원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갈 수 없었다.”

_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1만 건에 이를 정도로 국회의 입법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 국회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비책은 없나.

“졸속, 부실 입법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소위가 활성화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가 아는 동아태소위가 청문회를 통해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원내대표들과 협의를 거쳐 소위를 활성화하는 법안을 운영위에 제출한 상태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능 위주로 설치됐던 소위에서 보다 전문성 있고 밀도 있는 법안 심사가 가능할 것이다.”

_이른바 ‘동물국회’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이 이제는 ‘식물국회’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국회 운영의 정상화 차원에서 선진화법 개정 주장이 나오는데.

“선진화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만큼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덮어놓고 바꾸자는 태도는 안된다. 선진화법을 만들 당시의 취지를 감안할 때 폐지를 하는 게 아니라 신속처리제도(패스트 트랙)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점진적 개선을 해야 한다.”

_협치를 정치철학으로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야당이 막무가내로 나올 때는 리더십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일부에서는 국회의장이 너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한다.

“협치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쪽이라도 말도 안되는 논리를 앞세우는 경우엔 따끔하게 지적을 한다.”

인터뷰=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정리=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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