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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사하라 분쟁
서사하라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지난해 1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서사하라 국기를 흔들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서사하라는 1976년 스페인의 식민통치 종식으로 독립의 기회를 맞았으나, 곧바로 모로코와 모리타니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된다. 이에 폴리사리오 전선은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저항 중이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서사하라 독립 지지 시위에 참가한 시위대가 서사하라 국기를 흔들고 있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학자이건 일반인이건 필자가 만난 모로코인들은 ‘서사하라’를 이야기의 주제로 꺼내기만 하면 서사하라는 자신들의 영토라며 화를 내거나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했다. 서사하라 문제를 꺼내서 단 한 번도 부드럽게 이야기를 끝낸 기억이 없다.왜 그들은 서사하라 문제만 나오면 그렇게 분개하는 것일까?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유엔에서 서사하라를 55번째 아프리카 국가로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로코인들은 왜 이렇게 서사하라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어제국을 건설했던 모로코는 서사하라 지역에 살고 있는 주요 종족 사라위족과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서사하라는 역사적으로 모로코의 영토였다. 1976년 스페인 식민통치가 끝나면서 모로코와 모리타니는 서사하라를 2대1로 분할 점령하는데 합의했으나, 사라위족은 1973년부터 폴리사리오 전선(Polisario Front)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76년에는 사라위아랍민주공화국(SADR)을 수립하면서 무력투쟁을 조직화했다. 이에 대해 모로코는 1975년 당시 스페인의 통치하에 있던 서사하라에 약 35만 명이 참여하는 ‘녹색행진’을 주도하며 서사하라가 모로코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또한 모로코는 사라위족의 독립운동에 대해 즉각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벌여 서사하라 내전이 시작됐다.

폴리사리오 전선의 활동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던 모리타니는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서사하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모로코는 모리타니가 관리하던 영토까지 합해 서사하라 전 지역을 모로코에 병합시키며 모로코 영토임를 선언했다. 모로코는 1980년부터 1987년까지 1,600km에 걸쳐 요새화된 방어용 모래 언덕을 쌓고 지뢰를 매설하여 폴리사리오 전선에 대한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알제리는 사라위족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며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사하라 분쟁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알제리는 서사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틴도프 지역에 서사하라 난민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약 30년 이상 폴리사리오 전선에 군사원조를 해오고 있다. 이로 인해 모로코와 알제리가 대립하는 새로운 대결 국면이 형성되었고 모로코와 직접적인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1980년 10월 유엔이 폴리사리오 전선을 서사하라의 대표로 인정하였고 1984년 11월에는 아프리카통일기구(OAU)가 폴리사리오 전선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모로코는 1984년 아프리카국가로는 유일하게 OAU에서 탈퇴한 국가가 되었다. 2016년 아프리카연합(AU)은 틴도프에서 열린 SADR 출범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서사하라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지지하였다. 최근 들어 국제사회는 유엔의 입장을 지지하여 서사하라를 아프리카 국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유럽연합(EU)의 법원은 모로코와 EU간의 무역 협정이 서사하라에서 생산된 제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로 인해 모로코는 EU와 소원한 관계에 있다. 모로코는 올해 5월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2016년 이후 폴리사리오전선 반군에 재정 지원과 군사훈련을 제공한 것을 이유로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전선은 1988년 유엔이 중재하는 평화안을 수용하였고, 1991년 유엔 서사하라국민투표임무단(MINURSD)이 파견되었다. 우리나라는 1994년 8월부터 2006년 5월까지 12년간이나MINURSO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약 20명에서 40명 규모로 의료지원단을 파병한 바 있다. MINURSO는 휴전상황을 감시하고 서사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준비할 임무를 부여받고 창설되었으나, 1992년 1월 유권자의 자격문제로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유엔의 결정에 따라 국민투표를 공정하게 실시해 서사하라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지만, 모로코가 국민투표 결과가 독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2003년 서사하라 분쟁 해결을 위해 ‘베이커 계획(Baker Plan)’을 발표하여 서사하라 주민들에게 ‘민족자결권(self-determination)’을 인정하고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대해 폴리사리오 전선과 알제리는 찬성하였으나 모로코는 유엔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사하라의 면적은 한반도보다 약간 큰 편이지만 인구는 약 57만 명으로 소수이며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슬람을 믿고 있다. 모로코는 그동안 서사하라에 모로코인들이 정착하도록 강력한 이민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는 보너스를 지급하고 임금을 인상해서 지급해주고 있으며 이주민들에게는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모로코의 국왕인 무하마드 6세는 연례행사로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서사하라가 자국의 영토라는 것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유리하도록 조성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올해 3월에도 서사하라 지역인 다클라에서 유람선을 띄우고 서사하라가 모로코의 영토라는 것을 홍보했다.

서사하라 분쟁은 식민지배로 인해 나누어졌던 지역이 독립을 지향하는 전형적인 민족해방운동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로코가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서사하라 분쟁은 당사자끼리의 해결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랫동안 SADR를 이끌었던 모하메드 압델라지 에제딘이 2016년 7월 사망한 후 지도자로 선출된 브라힘 갈리역시 강경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1973년 폴리사리오 전선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고 스페인에 대한 최초의 군사적 공격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모로코와 서사하라 지역에서 영토 다툼을 벌이고 있는 폴리사리오 전선 소속들이 2016년 7월 서사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제리 틴도프 지역 난민 캠프에서 열린 지도자 모하메드 압델라지 에제딘의 장례식에 참석해 서사하라 국기를 흔들고 있다. 틴도프=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브라힘 갈리 사라위아랍민주공화국 지도자가 지난 2009년 10월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알제=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모로코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가능한 방법이 서사하라에 자치권을 먼저 부여하거나 연방제를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독립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선택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모로코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군사작전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휴전협정 위반으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피하기 어려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월 모로코는 국제사회의 고립을 피하기 위해 제55차 A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으로 재가입을 하였으나, 폴리사리오 전선이 모로코가 서사하라의 독립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모로코의 AU 퇴출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2016년 3월 5일 알제리 틴도프 인근의 난민캠프에 반기문 당시 유엔 총장이 탄 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반 총장은 폴리사리오 전선 지도자를 만나 서사하라 지역의 분쟁 해결을 촉구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유엔은 서사하라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8년 10월 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MINURSO의 임무를 2019년 4월30일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한 2018년 12월4일과 5일 양일간 제네바에서 분쟁종식을 위한 회의를 열기로 결정하고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전선, 알제리, 모리타니 등 모든 분쟁 당사자들을 초청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서로가 수용가능한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지만 당사자의 노력으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유엔의 노력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유엔이 서사하라에서 국민투표가 진행될 수 있도록 유엔이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넣는 방법이 최선으로 보인다.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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