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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PC방에서 살인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가 심신미약 판단을 받을 목적으로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였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심신미약 판정을 받는다면 감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에도 거제도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5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다.

가해 남성은 경찰에서 만취상태로 범행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고, 이 역시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노린 것이 아니냐고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형법에는 범행을 저지를 당시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한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량한다는 조항이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나 생각은 뇌의 기능에서 나오는 결과다. 살인을 했거나 범죄를 한 행위도 그 사람의 뇌가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심신미약의 주장처럼 뇌의 일시적인 기능 결함을 이유로 한 사람의 형을 감하는 것이 타당할까? 이는 자연스럽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과연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뇌에서 나오는 기능이라면 궁극적으로 책임은 사람이 아닌 뇌가 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을까?

2005년 10월 31일 미국 할로윈 데이 때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를 침입해 13시간이나 전직 여성 동료를 성추행 한 피터 브라운스틴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이 화젯거리가 된 것은 피의자 측 증인으로 출석한 마운트시나이대학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몬테 북스바움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는 피의자의 양전자단층촬영(PET) 영상을 제시하며, 대뇌 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약화되어 자신의 행동 수행이나 계획, 도덕적 판단에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그 판단에 의해 행동한 사람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브라운스틴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뇌 영상에서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의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피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아나 윈터를 죽이려는 계획 문건이 드러나면서 완전한 판단능력이 상실한 채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브라운스틴 사건은 소위 신경법학(neurolaw)이라는 신생학문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에 관련된 신경생물학적 자료를 이용한 뇌 기능의 객관적 자료를 통해, 계획을 세우거나 행동을 하는 데에 어떤 뇌의 작용이 있었는지를 법적인 해석에 이용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만약 뇌 이상으로 발생한 행동이 그 사람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정상인과 똑같이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단순히 뇌의 산소소비량이나 포도당 대사가 감소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자신의 행위를 판단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몇몇 연구들에 의하면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의도를 스스로 인지하기 이전부터 뇌는 이미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의식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뇌가 먼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우리 스스로는 자유의지에 의해 의식적인 의도나 판단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 이전 우리가 그러한 의지를 의식하기 이전부터 뇌에서 이미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들 역시 인간 행동의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내 탓인가? 뇌 탓인가? 아직도 많은 과학적 연구가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뇌의 탓이라고 해도 나의 뇌 역시 나의 일부이고, 경우에 따라서 뇌의 이상을 그대로 방치한 책임 역시 나에게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이기에,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응당하다.

그 과정에서 위와 같은 연구들과 논의들이 최대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형벌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나아가 건강한 법치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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