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17> 캣맘ㆍ캣대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허난희(오른쪽)씨와 이현주씨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아이고 한심한 X.”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2년째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있는 허난희(49)씨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동안 한 중년 남성이 허씨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뱉은 말이다. 허씨는 “무섭기도 했지만 대응하면 싸움이 커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고양이들에게 자칫 해코지를 할까 봐 아무 말도 못했다”며 “욕을 먹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 길고양이 급식소는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와 서울시설공단이 업무협약을 맺고 2016년 4월부터 운영하는 장소다. 서울시설공단이 허락한 밥 자리가 있고 카라가 건사료를 지원해주는 덕분에 허씨는 주민과의 갈등이나 비용 측면에서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래도 가장 불편한 건 주변의 시선이다. 올 여름부터 허씨와 함께 돌봄 활동에 동참한 이현주(21)씨는 “다짜고짜 왜 여기다 밥을 주냐며 손가락질을 하는 시민도 있고, 길고양이가 무섭다며 급식소를 없애 달라고 공단에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도 있다”고 했다. 술이나 음식쓰레기 등 고양이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일부러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두 사람은 전했다.

국내에 길고양이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다. 약 100만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고 추정될 뿐이다.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서울시가 2013년부터 2년 단위로 ‘길고양이 서식현황 모니터링’을 실시해 2013년 25만마리→2015년 20만마리→2017년 13만9,000마리로 줄어들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조사를 한 서울시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통계라는 점은 인정한다. 주거지역, 녹지지역, 상업지역 등 18개 지역을 샘플로 선정해 눈에 띄는 개체 수를 조사하고 이를 지역별 면적에 비례해서 계산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길고양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가고 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15~20년 살지만 길고양이의 수명은 고작 2~3년에 불과하다. 더욱이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이들이 늘고 동물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증가해 이제 캣맘, 캣대디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돌보는 게 밥 주고 예뻐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유기동물 발생 현황_강준구기자
◇이웃 싸움으로 번지고 결국은 고양이 피해로

지난 2008년부터 서울 관악구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대디 전모(46)씨는 하루에 평균 20~30마리의 밥을 챙겨주고 있다. 지금까지 밥을 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이곳에 밥 주지 말라” “그렇게 고양이가 좋으면 당신이 갖다 키워라”라는 것이었다. 밥을 주지 말라는 이유는 크게 ‘발정기 때 울음소리가 싫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는다’ ‘고양이가 똥을 싸서 지저분하다’ 등이다. 전씨는 “중성화수술(TNR)을 하면 길고양이들이 음식물도 뜯지 않고, 울음소리도 내지 않는다. 청소도 깨끗이 하겠다”고 상대방을 설득해 봤지만 돌아오는 건 대부분 욕이라고 했다.

전씨는 “처음에는 죄송하다고 사과하기에 급급했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설명을 해도 설득이 안 되더라. 지금은 언성이 높아지더라도 할 말은 다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씨가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비둘기가 고양이 사료를 먹고 주차장에 계속 똥을 싼다든지 구체적인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밥 자리를 옮긴다. 그는 “캣대디로 활동하는 게 너무나 힘들지만 그래도 캣맘보다는 덜한 것 같다”며 “캣맘은 상대방이 함부로 대해도 대응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양이전문 보호단체인 고양이보호협회의 회원 비중을 보면 여성이 80%를 넘고, 경제적ㆍ시간적 여유가 있는 40대 이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남성과 20~30대 여성도 늘고 있는 추세긴 하지만 아직 캣맘은 중년 여성이 대세다. 박선미 고양이보호협회 대표는 “50~60대 캣맘은 밥을 주는 도중 ‘아줌마 누구냐’고 물어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다 욕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 멱살까지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 간 갈등이 고양이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자주 있다. 3년 전부터 캣대디 활동을 시작한 백종식(48)씨는 얼마 전 누가 길고양이 밥 자리에 쥐약을 뿌려놓고 간 것을 확인했다. 백씨가 쥐약을 뿌린 포장마차 주인을 찾아내 이유를 확인하니 고양이에게 밥을 주니 쥐를 잡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씨는 “고양이까지 죽으면 이보다 더 많은 엄청난 쥐떼와 싸워야 한다”며 쥐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쥐덫을 전해 주며 주인을 설득해야 했다.

충북에 사는 김모(42)씨는 6년째 길고양이 밥을 주다 지난 4월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새끼 고양이 한 마리는 머리만 남고, 다른 새끼 고양이는 앞발과 뒷발이 날카로운 것에 잘려 죽은 채 발견된 것이다. 김씨는 “수년간 보던 어미 고양이도 그날 이후로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의심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고 겁이 나서 신고하지 못했다”고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길고양이 급식소 위에 “사료를 가져가지 말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내 방식대로 해야 돼” 캣맘 간 갈등도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이웃주민만큼이나 힘든 존재가 의외로 캣맘, 캣대디들이다. 이웃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서로 합의한 급식소에서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먹이를 줘야 하지만 규칙을 어기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캣맘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4년째 공원 급식소에서 캣맘 활동을 하는 정모씨는 “급식소 밥을 덜어가 굳이 다른 장소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줄 때도 있고, 비닐봉지에 밥을 넣어 던져주는 캣맘이 있다”고 전했다.

비닐봉지에 밥을 넣어 주게 되면 남는 사료나 비닐봉지로 인해 민원이 발생할 뿐 아니라 중성화수술을 위한 포획도 어려워진다. 포획 직전 굶겨서 사료가 들어 있는 포획틀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봉지에 밥을 담아 주면 길고양이가 사료를 저장해놓고 먹으므로 포획될 확률이 낮아진다. 정씨가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정씨는 “그 캣맘은 자기가 밥을 주던 고양이들에게 다른 사람이 밥을 주는 게 싫고, 계속 자신을 따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보호단체 ‘나비야사랑해’를 이끌고 있는 유주연 대표도 비슷한 갈등을 직접 겪은 적 있다. 유 대표는 아파트 공터에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의 허락을 받아 급식소를 만들고 12년째 밥을 챙겨 주고 있었는데 1년 전부터 밥그릇이나 물그릇이 바뀌어 있는가 하면 오래되어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아 보이는 사료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자칫 캣맘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유 대표는 쪽지에 ‘주민들이 싫어하는 것’ ‘겨울철 길고양이 물 챙겨 주는 법’ 등 급식소 관리 노하우를 적어 놓고, 다른 캣맘이 제대로 돌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 허난희씨가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힘들어도 캣맘ㆍ캣대디들이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이웃이나 다른 캣맘과의 갈등이 없다고 해도 매일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밥과 물을 챙겨 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허난희씨의 경우에도 7군데 급식소를 도는 데 적어도 한두 시간은 소요된다. 겨울철에는 추워서 야외활동 자체도 쉽지 않지만 물이 금방 얼어버리기 때문에 고양이들에게 먹일 따뜻한 물을 확보하는 것도 무척 어렵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건사료는 카라로부터 지원을 받지만 습식사료와 이따금 챙겨주는 간식, 구내염을 위한 약이나 구충제, 치료비 등은 허씨의 부담이다. 특히 한겨울 물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핫팩 구입비까지 포함하면 평소에는 월 30만~40만원, 겨울에는 50만원까지 돌봄 활동에 소요된다. 허씨는 “캣맘들은 이사도 여행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매일 두세 시간씩 시간을 내야 해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돌봄을 계속하는 캣맘ㆍ캣대디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길고양이들이 죽거나 사라졌을 때다. 이들은 돌보던 고양이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도, 로드킬을 당하거나 때로는 학대를 당했을 때도 모두 지켜봐야 한다. 사체를 치우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허씨는 “추운 겨울 새끼 고양이 사체를 치우면서 펑펑 울었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마음을 연 동물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고 말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이웃들에게 바라는 건 길고양이를 싫어하더라도 해코지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저 무관심하게 지나가길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박선미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대표는 “캣맘들도 밥 주는 데만 관심 있고 이웃과의 갈등해결에 소홀해선 안 된다”면서도 “길고양이가 해코지나 분풀이 대상이 아니라 도심 속 생태계 일원으로 보호 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공유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