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학부모 동의 없이 문 못 닫는다

입력
2018.10.28 18:27
수정
2018.10.28 21: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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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휴ㆍ폐원 지침 개정 추진

시행령 개정 안 되면 효력 없어

폐원땐 원아 인근 유치원에 배치

국공립만 ‘콩나물 시루’ 불 보듯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합동 점검회의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합동 점검회의서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교육부가 사립유치원의 휴ㆍ폐원 시 의무적으로 학부모 동의를 받도록 지침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사립유치원이 휴ㆍ폐원을 통보하면 인근 국공립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유아를 배치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원아모집 중단을 선언하거나 폐원을 예고하는 사립유치원들이 잇따르자 학부모들의 우려를 덜기 위해 긴급히 대책을 내놓은 것인데, 강제력을 갖지 못하는 데다 국공립유치원의 원아 흡수를 마냥 늘리기도 어려워 실효성을 자신하기 어려워 보인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전국 시ㆍ도교육청 부교육감들과 함께 28일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제1차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합동점검회의’를 열고 사립유치원의 휴ㆍ폐원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교육당국이 내놓은 대책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사립유치원이 휴ㆍ폐업 및 원아모집 무기한 보류 등을 결정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학부모의 동의를 받고 유치원운영위원회와의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어린이집의 경우 폐원 전 학부모 사전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유치원은 그렇지 않다”며 “유치원 교육과정과 방과 후 과정 운영 등에 관한 내부 지침을 개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각 시ㆍ도교육청은 사립유치원이 학부모들에게 휴ㆍ폐원을 알릴 경우 정식 폐원 신청이 없더라도 해당 유치원 원아들을 인근 국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배치하고 통학차량도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일부 유치원이 학부모들에게 문자나 가정통신문으로만 휴업이나 입학설명회 연기 등을 통보하는 상황을 감안한 조치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휴업ㆍ원아모집 중지 통보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특정감사 우선 대상에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날 회의는 당초 예정에 없었으나 교육부가 주말인 27일 전국 시ㆍ도교육청과 함께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을 구성하면서 개최됐다. 전국에서 사립유치원의 모집중단과 폐원통보 사례가 이어지자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26일 오후 5시 기준 원아모집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된 사립유치원은 7곳, 비리유치원 사태 이후 폐원을 통보한 곳은 3곳이다. 게다가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측도 30일 회원 약 6,000여명이 참여하는 토론회 명목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며 참석자들에게 상복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 옷을 입도록 한 터라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침을 개정하더라도 현행 유아교육법과 그 시행령상 위임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부의 행정지침은 법률상 위임 근거가 없으면 법적 제재효력이 없다. 현행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유치원 폐쇄 인가와 관련해서만 교육청에 사유 등을 담은 인가신청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할 뿐 휴업의 경우 보고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모집중지와 관련한 내용은 아예 없다. 시행령 개정까지 함께 나서지 않으면 허울 좋은 규제가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휴ㆍ폐원이 계속될 경우 인근 국공립유치원에서 원아들을 수용할 여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최근 관내 사립유치원 7곳이 만 3세 유아 420명에 대한 모집 중지를 통보하자 인근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5곳을 동원해 14학급을 증설하고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만 3세에 대해서는 학급당 15~18명이 권장 정원이지만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그 두 배에 달하는 유아를 한 학급에 수용하는 셈이다. 만약 휴ㆍ폐원이 이어져 수용원아수가 3배 이상 늘어날 경우 ‘콩나물 시루’ 교실이 양산돼 교육의 질이 하락되는 건 불가피하다. 국공립유치원 대부분이 초등학교와 시설을 공유하는 병설이라 학급 증설 여력 자체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서울의 한 공립 병설유치원 교사는 “학부모들의 돌봄교실 운영 요청에도 남는 교실이 부족해 개설을 못하고 있는데 원아 추가 수용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추진단은 이날 회의에서 국공립유치원 확대에 관한 세부계획도 논의했다. 유 부총리는 “2019년 3월 신설되는 국공립유치원 500학급은 이미 예산과 교원이 확보됐다”며 “2019년 9월 추가 확충될 500학급에 대해서는 2019년 예산 5,000억원을 투입하고 필요 시 예비비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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