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못 막은 가정폭력 살인… 가해자 격리 강화해야”

입력
2018.10.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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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녀가 “살인자 아버지를 차라리 사형시켜 달라”는 청원까지 올렸던 등촌동 살인사건은 25년 간의 지독한 가정폭력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확실하게 격리시키지 못한 데 따른 전형적인 가정폭력 살인으로 드러났다. 4년 전 이혼 후 6번이나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다녔던 피해자는 ‘긴급임시조치(접근금지명령)’를 받고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정폭력 범죄는 재범률이 매우 높은데도 정부가 가해자를 제대로 격리하지 못해 이번 사건처럼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이 26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파악된 총 914건의 살인사건 중 애인이나 동거친족에 의한 살인이 263건으로 28.7%나 됐다. 또 지난 3년간 연인관계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뻔한 피해자도 221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피해자들이 연인이나 남편 등 친밀한 관계에서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다 급기야 살인을 당하는 데까지 이르지만 경찰과 법원 등에서 가해자를 적극적으로 분리하려는 노력은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사건은 3만8,489건으로 4만5,206명이 검거됐으며, 피해자의 74.6%가 여성이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재범의 위험성이 높지만 가해자 구속률은 2015년 1.3%에서 지난해 0.8%로 오히려 떨어졌고 기소율도 2015년 28.8%에서 지난해 25.9%로 하락했다.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 격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재범률은 2015년 4.9%에서 2017년 6.1%, 2018년 7월 기준 8.7%로 1.8배나 증가했다.

정 의원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허술한 격리 조치 규정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면서 “특히 피해자를 위해 마련된 임시조치인 접근금지명령을 가해자가 위반하더라도 처벌이 과태료에 그치고, 이마저 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제도적 실효성이 낮다”고 비판했다.

가정폭력범에 대한 ‘임시조치’나 ‘긴급임시조치’(상황이 매우 긴급할 경우 임시조치 전단계로 내려지는 조치) 시 경찰은 가해자에게 퇴거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한,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통화 금지 등의 가해자 격리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가해자가 이를 위반하더라도 처벌이 과태료에 그치고 징역 등 형사처벌은 없다. 이 때문에 가해자들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다시 범행을 반복한다고 정 의원은 지적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 반 동안 임시조치 대상자는 1만9,270건이었고, 이 중 1,359명(7.1%)이 위반했다고 신고됐으나, 과태료 부과건수는 362명(27%)에 불과했다. 또 긴급임시조치가 도입된 지난 3년 간 긴급임시조치 대상자는 4,634명이었고, 이중 133명(2.9%)이 이를 위반해 신고됐으나 법원의 과태료 부과는 28명(21.1%)에 불과했다.

정 의원은 “지난해 12월 (긴급)임시조치 위반 시 과태료 대신 형사처벌을 신설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했지만 심의가 이뤄지지 않아 또 한명의 피해자가 생겼다”며 “강력한 가해자 분리조치를 통해 극단적인 범죄 피해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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