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살인 피해자 딸이 아버지 사형 요구한 이유는?

입력
2018.10.26 13:12

“밥에 콩이 조금만 섞여도 개 패듯, 풀려나는 게 두렵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신의 전처를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한 김모(49)씨. 아버지에 대한 사형 청원을 올린 딸은 악마 같았던 아버지의 폭력 행태를 털어놨다. 집에서는 아내와 세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면서도 밖에서는 선량한 가장으로 행동했다고 그는 고발했다.

지난 22일 피의자 김모(49)씨는 3년 전 이혼한 전처 이모(47)씨를 찾아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김씨는 전처의 차량 뒤 범퍼 안쪽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달아 동선을 파악했고, 범행 당시 미리 흉기를 챙긴 채 가발을 쓰고 접근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의 둘째 딸 A씨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저희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며 사형에 처해달라고 청원했다. A씨가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죽이고 6개월만 살다 나오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심신미약을 주장할 정신과 치료 증거를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청원에는 26일 오전까지 13만여명이 참여했다.

A씨는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왜 그랬냐’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면서 “치가 떨린다”고 분노했다. 그는 “이혼은 아빠의 일방적인 폭행 때문이다. 엄마뿐 아니고 저희 (세 딸)에게도 폭력과 폭언을 서슴없이 했다”고 말했다. 폭행은 유치원 전부터 있었고, 중학교 때는 때리는 것을 손으로 막자 밧줄로 손을 묶어놓고 피멍이 들도록 때렸다고 했다. 이유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밥을 펐는데 콩이 좀 들어가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너희는 맞아도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짐승보다 못한 새끼”라며 가차 없이 폭행이 이어졌다고 했다. 죽이겠다는 위협도 셀 수 없었다고 한다.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이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딸 A씨는 어머니를 살해한 친 아버지를 사형에 처해달라고 청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이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딸 A씨는 어머니를 살해한 친 아버지를 사형에 처해달라고 청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어머니에 대한 폭력은 더 심했다. 2015년 2월에는 “좋은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어머니의 형제들까지 다 불러놓고는 어머니를 폭행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A씨는 “당시 어머니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얼굴에 피멍이 들었고 흰 바지가 피에 젖어 검게 물들었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또 칼을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살해 위협을 했다.

아버지는 폭력 가장이었지만 밖에서는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행세했다. A씨는 “아빠는 지인들을 만날 때 엄마를 꼭 데리고 다녔다. 엄마한테 음식을 먹여준다거나 해서 나는 가정에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했다.

법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법원에서 어머니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아버지에게 내렸지만 아버지는 두려움도 없었고,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죽이고 6개월만 살다 나오면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A씨는 “(어머니는) 신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테지만 훈방 조치가 되거나 하면 보복을 하지 않을까 두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에도 폭력에 시달리면서 4년간 거처를 6군데나 옮기면서 불안에 떨다가 결국 살해됐다.

남겨진 세 딸은 지금도 아버지가 풀려나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A씨는 “집 밖에 나갈 때 문을 열 때도 많이 두렵다. 밖에 돌아다닐 때도 지나가는 사람 얼굴을 먼저 확인하게 된다”면서 “저도 이런데 엄마는 그 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 엄마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변 눈치를 보면서 다녔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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