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영토분쟁] 친사우디 엘시시 반환에 이집트 국민 부글부글

입력
2018.10.26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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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티란섬-사나피르섬 분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영토 분쟁 대상이었던 티란섬과 사나피르섬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영토 분쟁 대상이었던 티란섬과 사나피르섬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행정부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장 충성스러운 정부’로 통한다. 2013년 쿠데타로 정부를 전복, 정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엘시시는 사우디의 지지에 힘입어 이듬해 대선에서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다른 아랍권에서도 ‘이집트의 대통령’으로 인정을 받았다. 게다가 급격한 경제 악화로 사우디의 원조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6월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 단교 사태에 가장 먼저 가담한 나라도 이집트였다. 그런데 이러한 두 나라 간에도 영토를 둘러싼 긴장이 존재한다. 이집트와 사우디 사이 홍해(Red Sea) 북단 아카바(Aqaba)만 어귀에 위치한 두 개의 섬, 바로 티란(Tiran)섬과 사나피르(Sanafir)섬 얘기다.

각각 면적이 80㎢(티란)와 33㎢(사나피르)인 두 섬은 물수리와 저어새 등이 살고 있는 사실상의 무인도다.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들 외에 민간인은 단 한 명도 거주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엔 더없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이집트와 사우디, 이스라엘, 요르단이 접한 아카바만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티란 해협은 이스라엘 입장에선 아카바만에서 홍해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다. 1967년 5월 이집트가 티란 해협과 사나피르 해협을 봉쇄하면서 이스라엘 선박 통행을 금지한 건 제3차 중동전쟁을 부르기도 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사우디의 딱 중간 지점에 있는 탓에 이들 두 섬의 관할권은 오랫동안 모호한 문제였다. 예컨대 1937년 이집트 정부는 티란섬과 사나피르섬을 자국 영토인 시나이반도와 동일한 색깔로 표시한 지도를 사용했다. 1950년 1월 두 섬에 군대까지 파견했다. 반면 사우디는 당시 이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하면서도 “사우디의 사나피르섬”이라는 문구를 썼다. 이스라엘의 공격 가능성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 양도’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사우디 외무부의 1957년 3월 31일자 메모에도 해당 섬들은 사우디 영토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티란섬과 사나피르섬
티란섬과 사나피르섬

이 같은 영토 분쟁은 이집트에 친(親)사우디 정권이 들어서면서 묘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2016년 4월 9일 엘시시 정부가 사우디와의 해상경계와 관련, 성명을 내고 “티란섬과 사나피르섬은 사우디 해역에 속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집트 사회는 곧바로 들끓었다. 야당은 ‘조공 외교’라고 비난했고, 변호사 단체는 정부 결정이 불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2개월 후 1심 법원은 원고승소 판단을 내렸으나, 정부는 이에 항소했고 같은 해 12월 사우디와 맺은 해상 경계협정을 그대로 승인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항소심 역시 해당 협정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사우디와의 분쟁이 이집트 내에서 ‘정부 대 국민’의 구도로 바뀐 셈이다.

그리고 올해 3월 3일, 이집트 대법원은 1ㆍ2심 판결을 뒤집고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두 섬을 둘러싼 법적 문제는 ‘사우디 반환’으로 일단락됐다. 바로 다음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집트를 방문해 ‘과감한 투자’를 약속하는 선물을 안겼다. 하지만 오랜 점유기간 탓에 ‘티란과 사나피르는 당연히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이집트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아직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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