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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사태였다. 세금으로 조성된 구제금융 4,240억달러가 파산 직전의 금융기관들을 살려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 겁먹은 당국이 2차 대공황을 막으려 내린 조치였다. 한편으로 대형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전례가 됐다. 구제금융 덕에 살아난 5대 은행은 이후 10년 동안 5,830억달러의 기록적인 이익을 거뒀다. JP모건 씨티그룹 BOA 웰스파고는 몸집이 80%나 더 커졌다. 물론 벌어들인 돈이 국민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은 없었다.

□ 버몬트의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이 칼을 뽑았다. 월가를 위한 공짜보험이나 다름없는 대마불사에 종지부를 찍자는 건데, 그 방안은 쪼개기다.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국내총생산(GDP)의 3%(5,845억달러)를 넘으면 강제 분리하자는 법안을 지난 3일 발의했다. 법안 이름조차 ‘대마불사, 대마부존(too big to fail, too big to exist)’. 너무 커 파산할 수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다는, 금융 공룡이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기 전에 분리시켜 차단하자는 취지다.

□ 실제 6대 은행 자산은 10조달러로 GDP의 54%, 총 신용공여는 무려 13조달러(68%)에 이른다고 샌더스 의원실은 계산했다. “지금 어느 한 기관이 파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그는 묻는다. 일흔일곱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샌더슨 의원의 행보는 누구보다 주목을 끈다. 반(反) 트럼프 전선까지 이끌고 있는데, 그가 진단한 네 살 아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증세는 병적인 거짓말쟁이. 거짓말 탐지기마저 속일 수 있는 간 큰 사람이란 얘기다. 얼마 전에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최저임금을 비판해,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로부터 최저시급 15달러 인상을 받아냈다.

□ 2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샌더스 의원은 “여러분이 민주당 내에서 보게 될 싸움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파편화시키는 정체성 정치 진보를 비판하고, 함께할 이들과의 연대를 강조한 것이다. 늙지 않는 ‘샌더스의 진보’는 명분보다 실용에 방점이 가 있는 듯하다. 희망과 변화 같은 달콤한 메시지가 가득한 진보가 아니라, 정말로 세상을 바꾸려 행동하는 진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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