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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KAERIㆍ이하 원연)이 역대급 해외 연구개발(R&D) 사업을 수주하고도 파트너 벤처기업을 따돌리는 전형적 ‘갑질’ 끝에 일을 그르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일보 보도(10일자 1면)에 따르면 원연은 2014년 7월 경쟁입찰을 통해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기구의 핵융합 폐기물처리 기술개발 R&D 사업을 수주했다. 사업비 387만유로(약 55억원)는 원연 사상 최대규모였고, 원전 폐기물을 크게 줄일 국제 핵융합발전 기술개발에 원연이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된 의미도 매우 컸다.

그러나 3년 과정이던 해당 ITER 수주 사업(과제) 범위가 2015년 축소되더니 2016년 6월 서둘러 종료됐다. 원연 측은 당시 사업축소에 대해 “ITER 내부 인사문제로 과제가 축소됐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사업 참여자들 얘기는 다르다. 당시 ITER 사업엔 원연과 기술벤처기업인 ㈜에네시스, 한국전력기술, 핵융합연구소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응찰했다. 폐기물 특성조사 및 절단, 삼중수소 측정과 제거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연은 ITER 사업을 수주하자 컨소시엄 파트너들을 사업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사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연구원이 더 많은 부분을 직접 수행하게 됐다”고만 밝힌 뒤 일방적으로 파트너들을 축출했다. 그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물질 원격절단 개념설계 부문에서 독보적 노하우를 갖고 당초 전체 사업비중의 30~40%를 수행키로 했던 에네시스와 한국전력기술 등이 컨소시엄에서 빠지면서 ITER 측이 원연 컨소시엄의 사업 수행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돼 사업을 축소했다는 주장이 파다하다.

에네시스 대표였던 한병섭 박사는 “원연이 수주 과실을 독식하기 위해 파트너들을 배제한 결과, 사업 수행도 못하고 에네시스는 결국 2016년 폐업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원연 사례는 국내 기업 간 비즈니스에서 고질화한 기술 및 이권 탈취, 아이디어 도용 등 대기업 갑질의 복사판이다. 이런 갑질이야말로 비즈니스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중소기업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비리다. 공정위는 우선 공공부문부터라도 유사 갑질이 더 없는지 실태조사와 민원수렴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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