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퀘게,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 치료… 무라드, IS 성노예 참상 증언

입력
2018.10.05 19:51
수정
2018.10.06 12:4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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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라크 소수민족 야디지족의 여성 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왼쪽)와 콩고민주공화국의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퀘게. 로이터 연합뉴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라크 소수민족 야디지족의 여성 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왼쪽)와 콩고민주공화국의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퀘게. 로이터 연합뉴스

노벨 평화상은 파격보다 안정, 정치보다 인권을 택했다. 특히 시대의 화두인 성폭력에 대한 전세계인의 관심과 자성을 촉구했다. 한반도 대화 국면의 훈풍을 타고 남북미 정상의 수상 가능성으로 국내에서 유난히 관심 높았던 2018년 노벨 평화상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의사 드니 무퀘게(63)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성폭력 만행을 고발한 여성운동가 나디아 무라드(25)의 품에 안겼다.

산부인과 의사인 무퀘게는 민주콩고에서는 ‘기적의 의사’로 불린다. 지난 20여 년간 내전이 한창인 민주콩고에서 전시 폭력에 짓밟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여성 5만여 명을 치료하고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데 헌신해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서울평화상, 2014년 사하로프상을 받았고 2016년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전세계 위대한 리더 50인에 올랐다.

그는 2016년 AFP 인터뷰에서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는 금지하면서 왜 강간은 전쟁범죄로 처벌하지 않느냐”며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서울평화상 수상 소감에서도 “강간과 성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오랫동안 이용돼왔다”며 “온갖 성폭력을 극복한 생존자 여러분,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소망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힘든 시련을 견뎌낸 분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밝혔다.

무퀘게는 선교사인 아버지의 의료봉사활동을 따라다니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프랑스 유학 후 민주콩고로 귀국해 1999년 부카부 주에 설립한 팬지 병원에서 내전 와중에 총상을 입은 여성 환자를 본 뒤 마음을 굳혔다. 그는 “미친 남성이 여성의 생식기에 총질을 가해 골반이 터진 상태였는데 그 해에만 45명의 같은 환자를 치료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이 병원은 매년 3,500여명의 여성을 치료하고 있다. 무퀘게는 이날 노르웨이 매체에 “(노벨평화상 발표 당시) 수술실에 있었는데 주변에서 웅성거리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일부가 와서 뉴스를 전해줬다”며 “굉장히 감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디아 무라드(25)는 이라크 북부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출신이다. 2014년 8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납치돼 탈출하기까지 3개월간 성노예로 살아야 했다. 그가 끌려간 IS 주둔지 모술에는 여성과 아이 6,700여 명이 붙잡혀 있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얻어맞고, 담뱃불에 살이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히면 능욕당하는 처참한 상황을 견뎠다. 다른 곳으로 다시 팔려갈 수도 있던 상황이었지만 IS 대원의 감시가 느슨한 틈에 이웃의 도움으로 탈출해 이라크 북부 난민 캠프로 도망쳤다.

이듬해 난민 캠프를 찾은 벨기에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세계에 참상을 알렸다. 2015년 12월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IS 납치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그들은 우리를 모욕하고 더럽혔다"면서 “심지어 내가 졸도할 때까지 성폭력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제발 IS를 완전히 제거해달라"며 국제사회의 응징을 촉구했다. 지난해에는 교황을 만나 “IS에 붙잡혀 있는 야지디 여성들을 구해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이기도 한 인권 변호사 아말 클루니의 적극 도움을 받았다. 무라드는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자서전 ‘마지막 소녀’를 발간해 그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무라드는 이날 수상 소식을 듣고는 “영광스럽다”며 “모든 이라크인, 쿠르드족, 소수자, 전 세계에서 성폭력으로부터의 생존자들과 노벨평화상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예견된 것이지만, 노벨 위원회가 한반도 비핵화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4일(현지시간) “핵ㆍ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을 불게 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노력을 노벨 위원회가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남북 정상의 공동 수상 가능성에 잔뜩 무게를 실었지만 끝내 무산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프로세스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중동 평화 이니셔티브를 발표한 것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당시 노벨 위원회는 “평화상 수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평화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중동 정세는 더 혼돈에 빠졌다. 이 같은 학습효과로 노벨 위원회가 또다시 모험을 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수상자 선정 작업을 위한 일정상 이미 지난 1월 말 후보 접수가 마감돼 이후 펼쳐진 한반도 상황이 반영되지 못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이번 노벨 평화상 심사에는 216명의 개인과 115곳의 단체 등 총 331개의 후보가 경합했다.

더구나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외면한 채 선뜻 김 위원장의 손을 들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비핵화 대화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고문과 기아, 처형 등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광범위하게 자행했다”는 유엔의 평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치 여사의 경우,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 족 학살을 방관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고려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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