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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인증샷 결의ㆍ의자 앉기 등 공동 행동 나서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이 29일 영업 개시 직전 한자리에 모여 스스로 ‘앉을 권리’를 찾겠다는 내용의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1일 시작된 ‘의자 앉기 공동 행동’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촬영한 ‘인증샷 사진이다. 비슷한 시기 백화점과 면세점 등 전국의 유통사업장에서도 ‘인증샷 결의’가 이어졌다. 고객과 유통사에 치여 약자 취급을 받아 온 판매직 노동자들은 앞으로 ‘앉을 권리’와 함께 ‘쉴 권리’, ‘존중받을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판매직 노동자들의 내 권리 찾기 인증샷.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판매직 노동자들의 내 권리 찾기 인증샷.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판매직 노동자들의 내 권리 찾기 인증샷.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판매직 노동자들의 내 권리 찾기 인증샷.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의자는 존중입니다. 우리의 앉을 권리 우리의 힘으로.”

지난달 28일 오전 영업 개시를 앞둔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 소리 없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직 직원들이 저마다 피켓을 들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앉을 권리’를 찾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단체 인증샷을 찍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판매직 노동자들의 ‘인증샷 결의’는 비슷한 시간 전국의 백화점 및 면세점에서 이어졌다. ‘미안하다 방광아 너무 멀구나 화장실’ ‘작고 부족한 휴게공간 난 어디서 쉬나 ㅠㅠ’ 등 인증샷에 등장한 다양한 문구들은 하나같이 열악한 근무 환경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었다.

인증샷에 담은 결심은 며칠 후 행동으로 이어졌다. 고객이 없어도 바른 자세로 서서 대기해야 했던 이들이 1일 오후 3시를 기해 ‘의자 앉기 공동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막상 해 보니 의자에 앉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날 공동 행동에 참여한 A씨는 “백화점 측에서 앉지 말라고 강요하진 않아도 눈치가 보여 앉지 못했는데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하니까 마음 놓고 앉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성공을 말하긴 이르다. 김국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선전부장은 “수많은 판매직 노동자들이 지금도 마음 놓고 앉지 못하고 있다. 앉을 권리 찾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직 노동자들은 고급스러운 겉모습에 감춰진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각종 질환에 시달려 왔다. 구두를 신고 하루 7시간 이상 서서 대기하다 보면 엄지발가락이 휘는 ‘무지외반증’에 걸리거나 화장실을 제때 못 가 생기는 방광염도 끼고 산다. 정부가 시행규칙을 통해 의자를 비치하도록 한 지 벌써 10년, 그동안 아픈 몸과 마음을 꽁꽁 숨긴 채 참기만 해 온 이들이 스스로 앉을 권리 찾기에 나선 것은 열악한 근무 환경이 나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View&(뷰엔)’ 팀의 ‘얼마나 아팠을까… 구두 속에 꽁꽁 숨긴 판매직 노동자의 일그러진 발(5월 24일 자)’ 보도 이후 고용노동부가 노동환경 개선 캠페인과 함께 의자 비치 실태 등을 점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뷰엔 팀은 판매직 노동자들의 이번 행동을 계기로 이들의 근무 환경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았다. 인증샷을 비롯해 휴게실과 창고 등을 촬영한 사진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한국일보에 단독 제보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판매직 노동자들의 ‘의자 앉기 공동 행동’이 시작된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유명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한 직원이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판매직 노동자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다. 특히, 발에 맞지 않는 ‘유니화’를 신고 종일 서서 일하다 보면 체중이 발에 집중되면서 무지외반증과 같은 족부 질환에 걸리기 십상이다. 수술 외 치료법은 일하는 틈틈이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지만 이들의 일터는 휴식을 위한 의자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족부질환에 시달리는 판매직 노동자의 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각종 족부질환에 시달리는 판매직 노동자의 발 사진을 모았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한 유명 백화점의 근무 수칙이 규정하는 ‘올바른 대기자세’란 앉지 않고 서서 대기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근무수칙에 따르면 고객용 화장실 이용은 금지돼 있다(왼쪽). ‘잠시 앉아서 쉬어도 좋다’는 포스터를 제작해 부착한 백화점에선 눈치가 보여 앉아서 대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판매직 노동자들은 전했다.

◇앉을 권리 박탈된 현실은 여전

고용노동부의 대책 이후 일부 사업장이 의자를 비치했고, 앉지 말 것을 대놓고 강요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마음 놓고 앉지 못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수시로 눈치를 주거나 완곡한 표현으로 ‘기립 대기’를 종용하는 관리자와 손님인척 매장을 돌며 직원을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퍼’로 인한 압박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의자에 앉는 직원을 보기 힘들다는 한 백화점 게시판에는 ‘잠시 앉아서 쉬어도 좋습니다’라는 사측의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참으로 겉과 속이 다른 현실이다.

‘매장 내 올바른 대기 자세를 생활화’ 하자는 근무수칙으로 기립 대기를 규정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올바른 대기 자세란 앉지 말고 선 채로 고객을 맞이하라는 뜻이다. 면세점 직원 B씨는 “대기 시 손을 앞으로 모아야 하고, 짝다리도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매장 앞에 서서 지나가는 손님에게까지 인사하라던 3, 4년 전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좁고 부족한 휴게실ㆍ화장실

일부 백화점과 면세점 직원들은 붐비는 점심시간대 비상계단에 촘촘히 쪼그려 앉거나 라커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한다. 휴게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면세점 판매 직원 C씨는 “실질적인 휴식 시간인 점심시간이 거의 전쟁 수준이다. 식당이 비좁기도 하지만 잠깐이라도 자리를 잡고 쉬려면 허겁지겁 먹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고객 화장실은 가깝고 쾌적하지만 직원 화장실은 비좁고 멀다. 좌변기마저 부족해 줄을 설 경우 왕복 10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 같은 불편 때문에 아예 참다 보면 방광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유통 서비스 노동자 10명 중 3명이 1개 이상의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중 18.2%는 방광염에 걸린 경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지역의 한 백화점 계단실에 마련된 휴게 공간에서 판매직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대에는 앉아 쉴 자리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백화점과 면세점 휴게실에 놓인 소파가 군데군데 헤지거나 찢겨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판매직 노동자들은 비좁고 어두워 위험한 창고 대신 밝고 안전한 적재 공간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위험 도사린 창고

널찍한 매장에 비해 비좁고 어두운 창고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비좁은 동선으로 이동하다 여기저기 긁히는 일이 다반사고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계단에 물품 상자를 쌓거나 여직원 혼자서 사다리에 올라 상자를 내리는 등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력 충원 문제는 오히려 악화

면세점에서 일하는 D씨는 “손님은 늘었는데 인력 보강은 없다. 결원이 생겨도 충원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매장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으로 축소하다 보니 휴가는커녕 구내식당이나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감정 노동의 연속

고객의 심한 ‘갑질’ 까지는 아니더라도 판매직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감정 노동의 폐해는 심각하다. ‘손님은 왕’이라는 인식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억울하거나 힘든 일을 겪어도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웃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때문에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휴게시설 설치 운영과 의자 비치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실태 점검도 하고 있지만 강제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일 “강력한 처벌 보다 홍보와 계도를 통한 사업자 인식 전환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지도, 홍보 캠페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국현 서비스연맹 선전부장은 “자체 점검표를 사업자가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방식의 실태 점검이 과연 실질적 변화를 이끌기 위한 대책인지 의심스럽다. 이번 ‘의자 앉기 공동 행동’을 시작으로 휴게실이나 화장실, 창고 시설 등의 개선을 위한 행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

권리 찾기 인증샷을 찍고 있는 판매직 노동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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