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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5% 정도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반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요 정당 간 격차가 상당한 점도 놀랍지만 이런 격차가 최근 몇 달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특히 37%의 의석을 점한 제1야당의 낮은 지지율은 민주적 대표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할 정도다. 과연 이런 상태로 한국의 정당들은 유권자의 정치적 선호를 적절히 대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서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우선 한국 정당들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인 주요 정당 간 과도한 이념 대결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보수 진영 세력이 급격히 약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최근의 대북 화해정책을 두고서도 보수와 진보 진영의 평가는 엇갈린다. 구체적 합의 내용을 두고 실질적인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업적 선전과 폄하를 위한 대결만이 난무한다.

언뜻 보면 브렉시트 협상을 두고 진행되는 영국 내 갈등 및 분열과 닮아있다. 서로 자기 방식이 옳다는 주장만 있을 뿐, 갈등 해소를 위한 대화나 유권자 이해를 돕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 최근 영국 ‘더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브렉시트 협상과정에서 영국 유권자들의 37%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은 제3의 중도 정당이 창설될 경우 지금의 정당 지지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념 경쟁 속에서 정책적 선호가 대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기성 정당들이 보이는 이념 대결 행태가 한국 유권자들에게 이와 유사한 유인을 강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또 다른 원인은 제3의 대안을 추구하는 한국 유권자들의 기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형성된 민주당과 한국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당이 내부 개혁을 진지하게 시도하고 있음에도 유권자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 정당 내적 개혁의 노력을 통해 지지를 이탈했던 유권자들이 조만간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꺾이고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주변에서 유럽 신생정당의 성공스토리를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현재 유럽의 신생정당은 많은 부분 이민자 문제와 경제위기에 대처하지 못한 기성정당의 실패로부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스웨덴 선거에서 스웨덴 민주당의 선전 역시 유사한 사례이다. 좌우 이념지향을 대표하는 주요 정당들에 대한 전통적인 지지가 극우, 반이민주의를 표방한 정당에게로 이전된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포데모스나 프랑스의 앙마르쉬와 같이 기성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를 성공적으로 동원한 사례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지지했던 정당으로부터 이탈 후 쉽게 복귀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불만이 정당의 피상적인 노력만으로 진정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활기를 잃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특히 그 원인이 주요 정당들의 태도에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과 달리 현행 선거제도의 개혁에 강한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은 개혁 논의 초기와 달리 중선거구제도입을 조건으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수동적 태도를 유지한다. 제대로 된 정치적 의사의 대표와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하는 유권자의 희망이 각 정당의 이해관계 속에 또 다시 묻히고 있다. 과연 한국 정당들이 선거제도 개혁과 같은 중요 이슈를 공론화하려는 역할을 회피하고, 전략적 이해관계에 매달리면서 유럽과 같은 기성정당의 쇠퇴를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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