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버노 청문회’ 두 쪽 난 미국… 상원 법사위, 인준 표결 난항

입력
2018.09.29 01:10
수정
2018.09.29 01:3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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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캐버노(왼쪽)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인준 청문회에 출석한 캐버노와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한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브렛 캐버노(왼쪽)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인준 청문회에 출석한 캐버노와 그를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한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미 상원 법사위에서 열린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에 그의 성폭력 고발자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팰로앨토대 심리학과 교수가 출석해 피해 경험을 증언하자 미국 여론은 양분됐다. 민주당 측은 포드의 ‘자기 희생적’ 증언을 높게 평가하고 옹호하며 캐버노의 인준 표결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주류는 이번 사건을 민주당의 정치 공세로 몰아 붙이며 캐버노를 감쌌다.

◇‘미투 운동’ 주창자 참관 등 미 전역 관심

미국 전역은 이날 의회 상황을 생중계 하는 케이블 채널 C-SPAN을 통해 캐버노의 청문회에 나선 포드의 증언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포드가 “나는 이 자리에 오기를 원하지 않았고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시민적 의무’에 따라 증언을 결심했다”고 발언한 데 대해 반(反)트럼프 진보 성향 언론은 특히 박수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증언하는 포드의 행동을 ‘희생’으로 표현했다. 특히 지난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운동’의 폭발에 기여한 여성들은 포드의 편에 섰다.

◇민주 공세… 공화, 성범죄 수사관이 변호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여론을 등에 업은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은 청문회 시작과 함께 1991년 애니타 힐이 당시 청문회에 나선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공화당에 무시당한 사실을 언급하며 상황이 그 때와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카멀라 해리스 의원도 “백악관에 연방수사국(FBI) 조사를 요청하겠느냐”고 캐버노를 몰아붙였다.

상원 법사위를 모두 남성으로 채운 공화당은 ‘남성이 포드를 추궁하는’ 그림이 낳을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의원들 대신 성범죄 전문 수사관 레이철 미첼을 내세웠다. 미첼은 포드에게 증언의 진실성을 가리기 위한 질문을 던졌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미국 언론은 미첼의 몇몇 질문이 오히려 포드의 주장을 증명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캐버노 “조직적인 인격 말살”

캐버노는 이날 청문회를 ‘서커스’,‘좌파의 조직된 공격’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이렇게 기괴하고 조직적인 인격 말살은 국가에 봉사하려는 모든 선한 이들의 의지를 꺾을 것”이라며 “당신들이 최종 투표에서 나를 꺾을지언정 내가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사퇴 불가 입장을 피력했다. 아내와 딸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이 청문회는) 내가 정치에서 본 것 중 가장 비도덕적인 사기극”이라며 캐버노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로 캐버노의 인준을 촉구했다. 그는 “캐버노의 증언은 강하고 진실성 있었으며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며 “인준을 연기하고 방해하려는 민주당의 사기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미국 언론은 캐버노가 포드의 증언을 강하게 부정하며 때로 감정적인 모습까지 보인 것이 흔들리던 공화당의 지지를 붙잡았다고 평가했다.

포드의 증언이 전국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공화당과 보수 진영이 캐버노를 옹호한 이유는 그의 인준 문제가 11월 중간선거와 맞물려 있어서다. 보수 입장에서는 지난 7월 은퇴한 중도 성향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공백을 캐버노가 메우면 연방대법원을 보수 우위로 바꿀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으로 판세가 불리한 공화당은 중간 선거에서 패한다면, 캐버노가 아닌 다른 후보를 세우더라도 민주당의 반발로 인준이 어려워질 수 있다. 보수 성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브렛 캐버노를 인준하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진짜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내 연방대법원의 4대4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튿날인 28일 오후 열린 상원 법사위 표결에 앞서, 공화당 내 이탈 가능성이 점쳐졌던 제프 플레이크 의원은 “우리의 사법시스템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무죄 추정 원칙을 보장한다”면서 캐버노 지지를 선언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추가 조사 필요성을 주장하며 표결 연기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물론 법사위에서 인준 제청안이 통과된다 해도 캐버노로선 다음주 초쯤으로 예상되는 ‘상원 본회의 표결’이라는 최종 관문을 넘어야 한다. 공화당이 상원 100석 중 51석을 차지하고 있어, 최소 2명만 반대 입장으로 돌아설 경우 캐버노의 대법관 취임은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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