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들 “우리는 공부하는 노동자”… 실상은 쥐꼬리 장학금ㆍ해고 통보

입력
2018.09.17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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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성균관대 조교들에 대한 갑작스런 해고 통보에 “갑질 없는 평등한 대학을 원한다”며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 전국대학원생노조 제공
올해 2월 성균관대 조교들에 대한 갑작스런 해고 통보에 “갑질 없는 평등한 대학을 원한다”며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 전국대학원생노조 제공

“조교가 씹다 버린 껌이냐! 부당해고 즉각 철회하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앞에 선 한 대학원생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 2월 성균관대가 3월 봄학기를 3주 앞두고 학생 조교들에게 “2월 말을 끝으로 행정조교를 임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서다. 관행에 따라 조교 근로를 연장하리라 믿었던 행정조교 22명은 별안간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휴학할 처지에 놓였다. 학교 측은 “장학금을 받는 조교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이고, 계약서를 통해 고용한 게 아니어서 해고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교 해고 통보는 소득 없는 대학원생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300만~500만원에 달하는 한 학기 등록금과 추가 비용을 마련할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해서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연구환경 조사보고서(2016년)에 따르면 박사과정생 응답자 589명 중 52.8%(311명)가 교내 임금을 받아 등록금을 조달한다고 밝혔다.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인건비 명목으로 받는 연구비나 조교 임금, 또는 본부ㆍ학과 소속 자체 직원으로 일하며 학위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어 장학금 26.8%(158명), 지인(가족ㆍ친척 등)의 지원 18.7%(110명) 순이었다. 시간강사나 과외 등 교외에서 얻는 소득으로 해결하는 학생도 12.6%(74명)나 됐다. 5.3%(31명)는 대출로 등록금을 충당했다. 장학금 액수가 적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부담하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78.0%(99명)이나 됐다. 가뜩이나 학업 환경이 열악한데, 조교 월급마저 사라지면 연구와 학업에 집중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들은 교내 임금이나 장학금 등 지원은 열악한 반면, 학생들이 맡는 업무강도가 교직원에 준한다고 하소연한다. 조교들은 지도교수에게 소속돼 연구를 돕거나(연구조교) 수업 등 교육 활동에 투입된다(교육 조교). 또는 행정업무를 맡기도 한다(행정조교). 이들은 한 학기 노동의 대가로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등록금에 준하는 금액의 장학금을 받는다. 이런 조교 자리조차 20여명의 재적생 중 1~2명 만이 얻을 수 있다. 박사과정생 가운데에는 시간 강의를 하는 이들도 있다. 연구실 이외에도 외부 관련 학회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전업 학생도 연구에만 전념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실험장비를 나르고 도구를 준비한 뒤 실험에 임하는데, 용역 보고서에는 참여율을 10% 이하로 낮게 책정해서 인건비를 적게 준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줄 금액에 맞춰 참여율을 거꾸로 계산하다 보니 업무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인건비를 받는다.

과제 검사, 학부생 강의 등을 하고 나면 어느덧 저녁이다.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온종일 조교 업무를 하고 나니 역설적이게도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한 대학원생이 털어놨다. 게티이미지뱅크
과제 검사, 학부생 강의 등을 하고 나면 어느덧 저녁이다.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온종일 조교 업무를 하고 나니 역설적이게도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한 대학원생이 털어놨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원생 과반수 “나는 학생노동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을 학생근로자 또는 노동자라 생각하는 대학원생들이 많다. 전국대학원생노조에 따르면 전국 대학원생의 과반수는 스스로 ‘학생이자 노동자’라고 생각하거나, ‘학생이 아니라 그냥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원생들은 돈 걱정 없이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 1주일에 평균 20~30시간을 조교로 일한다. 동시에 스스로 학문의 깊이를 더해 훌륭한 연구자가 되기 위해 연구과제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는 임금이 아닌 ‘장학금’ 명목으로 받는다.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으니 제공받는 장학금조차 언제든 끊길 수 있다. 노동자나 다름없지만 4대 보험은 보장받지 못한다. 조교 업무에 뚜렷한 경계가 없으니 연구 아닌 일도 끝없이 해야 한다.

전국대학원생노조 구슬아 위원장은 7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대학원 조교들에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내린 일도 있다"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임용추천서를 쓰는 장학생 지위라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전국대학원생노조 구슬아 위원장은 7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대학원 조교들에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내린 일도 있다"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임용추천서를 쓰는 장학생 지위라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동국대, 갈등 후 조교에 퇴직금 지급

대학원생들은 이제 자신들의 처우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동국대 대학원생 총학생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임봉준(자광스님) 동국대 이사장과 한태식(보광스님) 총장을 근로기준법 등 위반 혐의로 서울노동청에 고발했다. 서울노동청은 한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대학원생 등은 “행정조교가 교직원들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근로계약서 작성 등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노동청은 행정조교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조교들이 독자적으로 업무수행을 할 수 없고 사용자에 종속돼 있고 동국대가 과거 이들에게 퇴직금과 연차유급제도 등을 적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동국대는 이후 행정조교 제도를 전면 개편해 지난해부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퇴직금 지급과 4대 보험 혜택 등을 모두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 주요 사립대 등에선 여전히 조교에 임금 대신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어 갈 길이 멀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에는 학생 조교를 근로자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학문연구와 노동을 겸하는 학생 조교들의 현실을 고려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조교들의 노동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진척이 있다면 처우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가 높다.

2018년 2월 24일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출범했다. 사진 노조 제공.
2018년 2월 24일 전국대학원생노조가 출범했다. 사진 노조 제공.

전국 단위의 노동조합도 결성됐다. 올해 2월 성균관대와 고려대, 동국대 등 전국 6개 대학교 소속 대학원생들이 모여 꾸린 노조는 이제 25개 대학 소속 조합원 수백명 규모로 불어났다.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로 부당한 지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던 일부 교수들의 행태가 바뀌거나 적어도 문제인지 아닌지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대학원생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고려해 조합원들의 신원과 정확한 규모는 극비로 유지한다.

전국대학원생노조 강태경 부위원장은 근로계약서에 조교의 업무를 명시하면 교수의 연구를 돕는 본연의 업무와 그 외 근거도 없이 요구했던 허드렛일의 경계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전국대학원생노조 강태경 부위원장은 근로계약서에 조교의 업무를 명시하면 교수의 연구를 돕는 본연의 업무와 그 외 근거도 없이 요구했던 허드렛일의 경계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대학원생을 근로자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도록 해 대학원생의 연구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현재 수업과 연구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할 조교들은 학과 행정업무와 크고 작은 교수의 심부름까지 하는 등 업무영역이 불분명한 실정이다. 강태경 부위원장은 “근로계약서에 조교의 업무를 명시하면 교수의 연구를 돕는 본연의 업무와 그 외 근거도 없이 요구했던 허드렛일의 경계가 생길 것”이라며 “특히 연구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맡긴 뒤 성과를 교수 이름으로 발표하는 대리 연구도 일정 부분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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