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서울 마포구의 한 라쿤카페에서 손님들이 자고 있는 라쿤 다리를 만지고 있다. 어웨어 제공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5년 전, ‘동물교실’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이구아나, 뱀, 심지어 반달가슴곰 새끼 등 온갖 동물을 아이들이 만지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동물들이 병들진 않을지, 아이들에게 위험하진 않을지 의문이 들었다. 동물을 데려온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는 주로 새끼 동물들을 데려가요. 더 귀엽고 공격성도 약하니까요. 저희는 굉장히 다양한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어요. 타조도 세 마리가 있었는데 두 마리 죽고 한 마리 남았네요.”

업체 대표는 타조 새끼들이 죽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이 업체가 하루에 유치원 한두 곳만 간다 해도 하루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1주일이면 1,000명이 넘는 사람 손이 어린 동물들을 주무를 것이다. 타조뿐 아니라 많은 동물들이 죽어나갈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살아 있는 야생동물들을 체험 도구로 사용하는 수업은 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지만 원장은 반응이 좋아서 계속하겠다고 했다.

‘동물원 법’이 있지만, 동물들을 교육기관에 데리고 다니는 이동 동물원, 동물을 만지는 체험 동물원, 동물 만지기와 놀이시설을 겸한 동물 키즈카페 등 소규모 동물원은 법의 규제대상이 아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막여우, 북극여우, 라쿤, 미어캣, 왈라비 등 온갖 야생동물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이용된다. 이동식 동물체험수업을 하는 한 업자는 태국에서 멸종위기 동ㆍ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ㆍ사이테스) Ⅰ급인 늘보원숭이, 게잡이원숭이, 샴악어 등을 구입, 2014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밀반입해서 이용하다 적발됐다. 번식해 판매하는 업체도 있다.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 번식장, 사육장이 과연 야생동물의 생태와 복지를 고려할까? 열악한 환경으로 동물이 병드는 일도 많은데 현행법상 동물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한, 수의사 고용 의무는 없다. 어린이집에 왔던 그 새끼 반달가슴곰은 몇 년 뒤 어른곰이 됐을 텐데, 과연 어디로 보내졌을까?

카페 내 라쿤이 좁은 철장 안에 갇혀 있다. 어웨어 제공

사람과 동물이 같이 걸리는 인수공통 질병 위험도 크다. 거북, 뱀 등 파충류는 살모넬라균을 갖고 있고, 라쿤은 인수공통질병인 광견병의 보균체이며 북미너구리회충 병원체의 숙주다. 모두 치명적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설에서 아이들이 온갖 동물을 만지고 그 손으로 다시 과자를 먹는다. 수많은 아이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기에 질병 전파의 위험도 크다.

슬쩍 만져본 라쿤, 잠시 목에 걸어본 뱀을 통해 대체 무엇을 교감한단 말인가. ‘동물체험’이 아닌 ‘동물학대 체험’이라 해야 정확할 이 경험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얼 배울까? 나의 몸은 누군가의 ‘체험 도구’가 될 수 없다. 비인간 동물도 마찬가지다. 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면 된다. 야생동물이 궁금하다면 숲과 강가에 찍힌 너구리, 삵, 고라니 발자국을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인스턴트식품처럼 야생동물을 소비하는 문화가 우리 주변에 선뜻 와 있다. 거기에는 짙은 녹음도 없고, 산들거리는 바람의 냄새도 없다. 그저, 동물의 모양처럼 생긴 비즈니스가 있을 뿐이다.

황윤 (영화감독)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