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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씌우고 추방 위협” 궁지 몰린 난민신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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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자 연장 위해 출입국사무소 찾자
담당 공무원, 서류 조작 몰아세워
“돈 벌러 한국 왔다” 엉터리 통역에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2
출입국사무소 전화 대응 못하니
“심사 종료” 수백만원 범칙금 부과
“모욕 당해” 청와대 인근서 단식투쟁
“범칙금 300만원을 내든지, 법원으로 가든지, 아니면 이집트로 돌아가라.”
난민신청자 압델라흐만 자이드(35ㆍ이집트인)씨는 인천출입국ㆍ외국인청 안산출장소에서 비자담당 공무원에게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 한국에 도착해 난민신청을 한 지 6개월이 지난 후(2016년) 규정에 따라 난민신청 비자(G-1)를 처음으로 연장하기 위해 방문한 사무소에서 그는 난데없이 서류를 조작했다며 거칠게 몰아세워 졌다.
시작은 거주지 관련 서류에 적힌 이사 날짜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범칙금 12만원을 내라는 통보였다. 집주인이 실수로 자이드씨의 이사 날짜를 잘못 쓴 것이었다. 자이드씨는 친구집에 방문했다가 두 달 후 자신이 그집으로 이사하게 됐는데, 집주인은 자이드씨의 실제 이사 날짜가 아닌 친구를 방문한 날짜를 착각해 기재했다. 이후 집주인 할머니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서류를 고쳤지만 자이드씨는 또다시 벽에 부딪혔다.
“집주인과 통화를 마친 공무원이 ‘너는 거짓말쟁이다, 집주인이 너를 두 달 전에 봤다고 하지 않느냐, 서류를 조작하려고 하느냐’고 화를 냈어요.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 돈을 내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너는 서류를 조작하려고 했기 때문에 300만원을 내든지, 법원에서 소송하든지, 아니면 이집트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고 하더군요.”
겁이 난 자이드씨는 이번엔 아예 집주인과 함께 택시를 타고 출입국사무소로 왔고, 집주인은 자이드씨의 잘못이 아님을 설명했지만 공무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자이드씨는 “공무원이 나를 불러서는 ‘너는 나를 너무 귀찮게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고도 말했다.
“범칙금으로 낼 돈도 없고, 그렇다고 이집트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비자기한까지 끝나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자이드씨가 네 번째로 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이번엔 공무원들은 그를 조사실로 데리고 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다그쳤다. 그는 서류에 서명하지 않고 버텼다. “잘못이 없는데 그런 종이에 서명하면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로 작용해 이집트로 보낼 구실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종일 조사실에 붙잡혀있던 자이드씨에게 마지막으로 공무원들은 그의 난민신청자 아이디카드를 압수하고 “당신의 비자는 취소됐으니, 지금 인천공항으로 가 오늘 밤 이집트행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통보했다.
공포에 질린 자이드씨는 맞섰다. “난민법에 따르면 아무도 나를 이집트로 쫓아낼 수 없다. 조사실에 가두고 강제로 문서에 서명하라는 건 불법억류”라고 버텼다. 어찌 된 영문인지 결국 그는 범칙금을 내지 않고 비자연장도 받을 수 있었다. 첫번째 비자연장문제로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한 지 3주만이었다. 안산출장소 관계자는 “자이드씨에겐 출입국관리법 36조(체류지 변경시 14일내 신고)와 26조(허위서류 제출)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보이나 이후 오해가 풀린 듯하다”고 밝혔다.
난민신청자들의 다른 이름은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해줘 우리 국민이 누리는 수준과 비슷한 권리를 보장해주려면 철저한 사전 검증 시스템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이를 위해 난민법이 존재하고, 난민심사 당국이 할 일을 한다.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고향땅에서 밀려난 이들은 누구보다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들에게 우리의 난민심사 시스템은 자이드씨의 사례가 보여주듯 냉혹하고 비합리적이다. 제주도로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대거 몰리며 난민이슈가 떠오른 이후 법무부는 부랴부랴 난민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지만, 약자를 궁지로 내모는 불합리한 관행은 사라지기 힘들 전망이다.
◆정보부족… 감당은 오로지 난민의 몫
2년 가까이 난민 심사를 기다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심사가 종료된 사실을 인지한 사례도 있다. 2012년 한국에 입국한 아랍권 국가 출신 난민신청자 무사(가명)씨는 취업허가를 받으려 출입국사무소를 찾았다가 자신의 난민심사가 이미 끝나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무사씨는 기억을 더듬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전화가 두번 왔지만 모두 받지 못했고, 전화 온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거니 외국인종합안내센터 콜센터의 자동안내가 연결돼 전화를 끊었던 사실을 알아냈다. 그 외 다른 통지는 없었다.
무사씨는 다시 난민심사 신청을 한 ‘재신청자’가 됐지만 출입국사무소는 무사씨의 미등록 기간에 대해 출입국관리법 제94조 17항(법 제25조를 위반하여 체류기간 연장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체류기간을 초과하여 계속 체류한 사람) 위반을 들어 범칙금 200만원을 부과했다. 무사씨가 난민 지원 단체를 통해 어렵게 대출을 받아 범칙금을 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행정착오가 있었다’며 이전 범칙금을 찾아가고 400만원을 다시 내라는 통지가 날아왔다. 체류자격은 인정했던 기존 조항이 아닌 이번엔 체류자격이 없는 출입국관리법 제94조 제7항(법 제17조 제1항을 위반하여 체류자격이나 체류기간의 범위를 벗어나서 체류한 사람)을 적용한 것이었다.
난민인권센터 난센의 김연주 활동가는 “난민심사 종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한 탓에 심사 자체를 못 받아 재신청을 한 것인데, 현재 법무부가 재신청자는 가짜 난민으로 보는 상황에서 무사씨는 체류 지위가 더 불안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난민심사 과정에서의 정보제공 문제에 대해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난민이 가장 먼저 작성하게 되는 난민신청서는 최대한 다양한 언어로 작성 가능해야 한다. 프랑스어나 아랍어로 난민신청서를 써 가도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을 해 오라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지체되는 문제가 있다”며 “난민인정이 거절될 때에도 거절 사유가 난민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제공돼야 하는데, 현재는 이의신청 등 후속 조치에 대한 영어 안내문만 나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많은 난민신청자는 별수 없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대행업체를 찾게 된다.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이태원 인근에는 각종 비자 대행 서비스를 진행하는 행정사들이 모여있다. 13페이지에 달하는 난민신청서 작성과 접수를 대신해주는 비용으로 행정사에서는 1인당 약 50만원을 요구한다. 정상적인 난민신청과정에서는 비자 수수료를 제외하고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난민지원센터의 고은지 사무국장은 “난민신청자는 첫 6개월 동안 노동할 권리가 없고, 이때 지급받을 수 있는 한 달 40만원 생계비도 지급률이 전체 신청자 5%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견뎌야 하는데 난민신청과정에 난관이 많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행정사의 손을 빌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돈 벌러 한국 왔다” 허위통역에 시달려
면접 심사과정에서 허위통역으로 난민신청자들이 억울하게 난민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집트에서 한국으로 온 A씨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면접실에서 약 20분가량의 면접심사 후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았다. 면접조서에서 난민신청서에 작성한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 진술했다고 나와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뒤늦게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의신청을 했지만, 같은 이유로 기각 결정을 받았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A씨의 면접조서에 난민신청 사유로 A씨가 하지 않은 말들이 기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난민신청 사유를 묻는 질문에 조서에는 “한국에서 장기간 합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일해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 신청을 하였습니다”라고 쓰여있었고, “난민신청서에 기재된 난민신청 사유는 모두 거짓인가요”라는 질문에 “예.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난민신청을 하려고 사유를 거짓으로 기재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결국 면접조서의 허위 기재를 인정한 법무부는 뒤늦게 A씨의 난민불인정 결정을 직권 취소했고, 재면접을 거쳐 A씨는 난민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피해는 비단 A씨만 당한 게 아니었다. 난민인권센터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공무원 조모씨가 담당하고 아랍어 통역자 장모씨가 통역한 면접에서 최소 18건의 면접조서가 허위작성된 사례를 적발했다. 알고보니 아랍어 통역자 장모씨는 전문통역인은커녕 아랍어 전공자도 아니었다. 지난달 18일 난민인권센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허위로 작성된 난민면접조서로 불인정결정을 받았던 피해자들의 손해를 보상하고 구제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없었고, 현재 공무원은 난민 업무에서 배제돼 있으며 통역인은 통역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증거로 낸 판결문 당연한듯 ‘가짜’ 의심
자국의 판결문이나 언론 인터뷰와 같은 난민신청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하는 증거자료들이 가짜로 의심받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부 비판 시위 과정에서 판사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던 자이드씨는 중동의 유력 언론 알자지라와의 인터뷰 등 언론 영상이 업로드된 유튜브 링크들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해당 사이트가 가짜일 수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집트 난민 신청자 B씨는 출입국항에서 신청을 했다가 불회부결정(난민신청절차개시 불허)을 받았다. B씨가 자신이 당한 박해를 증명하려 제출한 이집트 법원 판결문이 위조로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출입국관리소는 주 카이로 대사관에 판결문 검증을 의뢰해 받은 ‘문서에 직인이 없으니 가짜인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직접 이집트 현지 변호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판결문이 진본으로 밝혀져 B씨는 난민신청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는 “정부는 난민신청자에게 증거자료가 진짜임을 증명하라지만 판결문 등이 박해의 주체인 해당 정부가 만든 것이어서 작성자가 진위를 직접 확인하기 불가능하다. 해당국 변호사를 고용해 문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더니 이번엔 변호사도 믿지 못한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난민심사 과정의 전문성 부족이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 관련기관 공무원은 “예를 들어 신청자가 자신을 아프리카 추장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서류보다 당사자 진술에 의존하게 되는데, 진술 신뢰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며 “한국은 독일처럼 난민심사의 난이도를 단계별로 나눠 할 만큼 심사관들의 전문성이나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독일 등 주요 유럽국가에서는 각지의 외교관들이 난민신청자 출신국 정보를 세밀히 기록해 부처간 공유를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시스템이 이뤄져 있지 않다.
고압적일 뿐 아니라 인권 침해적인 말까지 하는 담당 공무원들과 최근 높아지는 난민혐오 정서도 난민신청자들 고통스럽게 한다. 2016년 한국에 입국한 직후 출입국사무소를 찾은 자이드씨는 무례하고 모욕적인 담당 공무원의 태도에 크게 당황했다. 그는 “공무원에게 ‘난민 신청을 하러 왔다’고 말했지만 처음에 ‘안돼(NO)’라고 말하며 불쾌한 것처럼 반응하기도 하고, 기다리라는 공무원의 말에 1시간을 기다렸지만 공무원은 ‘이쪽을 보지 말라! 고개를 돌려라!’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최근 높아지는 난민 혐오 분위기에 자이드씨 페이스북 메시지로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식의 혐오 발언들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국 위해 싸우다 온 한국에서 희망 잃었다”
자이드씨는 팔레스타인 난민 아버지와 이집트인 어머니를 둔 이집트인이다. 아버지 국적을 따르는 규정상 그는 태어나서 자란 이집트에서도 난민 신분이었다. 대학생시절부터 사회운동을 해 온 그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에도 참여해 정치적 활동을 했다. 외국인이라는 신분상 그는 정치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의 운명은 2012년 법관들 모임인 ‘판사클럽’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다 체포된 후 뒤틀렸다. 체포된 이후 자이드씨는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의 팔레스타인 국적이 문제가 돼 ‘하마스가 이집트에 침투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했고, 38명의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다. 8일 만에 가석방됐고 이후 이집트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는 2014년 끝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예상치 못한 중형에 자이드씨는 “항소하더라도 법원을 믿을 수 없었다”며 “아마 나는 감옥에 가면 그곳에서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고 이후 부처 간 행정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집트 행정을 이용해 8일 만에 바로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단지 이집트인은 말레이시아에 갈 때 비자가 필요 없어 했던 선택이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던 자이드씨는 보다 안전한 제3국을 모색했고, 난민법이 있으면서 무비자 입국 가능한 한국행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한 지 2년하고도 5개월째. 자이드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면접심사에서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고 현재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접수한 상태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자이드씨는 청와대 앞에서 또 다른 난민 신청자인 아나스, 무나씨와 단식 농성 중이다. 이들은 여전히 난민 심사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의 개선과 난민심사 탈락의 정확한 이유, 난민신청자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와 허위통역 등과 같은 인권침해 사건 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단식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건강상태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4일 오후에는 각각 19일째, 6일째 단식 중인 아나스씨와 무나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응급후송됐다.
5일 오전 난민 지원 시민단체들은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긴급공동행동을 열고 “요구사항을 해당부처에 전달하겠으니 단식을 풀라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과의 한차례 면담을 제외하고 법무부는 이들의 요구에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왜 이들이 거리로 나와 단식을 하게 되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자이드씨는 “이집트를 더 살기 좋은 국가로 만들기 위해 싸운 것밖에 없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한국은 단순히 난민을 거절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모욕하기까지 한다. 이집트를 떠난 지 3년하고도 8개월이 훌쩍 지났다. 매일 하루가 지날수록 내 인생에서도 하루씩 잃고 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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