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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빌라와 호텔의 가장 꼭대기 층에 펜트하우스가 있다. 큰 회사의 회장실과 임원실은 대개 사옥의 높은 층에 있다. 그보다 건물 층수가 낮은, 작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건물의 높은 층에서 지낸다.

소음과 먼지가 적고 채광과 전망이 좋다는 게 실질적인 이유겠다. 하지만 최신 건축 공법으로 번듯하게 지은 건물에서 전망 외에 저층과 고층의 차이가 특별히 더 있나 싶기도 하다. 전망 또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보이는 높이는 입지에 따라 제각각 다르지 않나. 산 정상이나 비행기에서처럼 무조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는 취향이 아닌 이상 말이다.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그 바쁘신 분들이 엘리베이터 타는 시간만 더 걸리고 오히려 번거롭겠다.

그러니 이같이 정형화 된 공간 배치는 실용적인 이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조직의 위계 구조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그릴 수 있듯 최고 권력자니까, 다시 말해 높은 사람이니까 높은 층에 있는 게 당연하다 여겨왔겠지. ‘윗사람’은 위층에, ‘아랫사람’은 아래층에 있는 거다. 위계에 따른 공간의 서열이다.

그런데 이 동시에서는 제일 아래층인 1층이 ‘낮다’ 하지 않고 ‘힘세다’ 하고 있으니, 우선은 좀 당황스럽고 무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낮은 자리가 억눌리고 찌그러져 있는 게 아니라 말한다. 높은 자리에 있지 못해 높은 층들을 ‘업고 있는’ 모양새를 서러운 처지로 보지 않는다.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로 구성된 체계를 전복하고, 낮은 자리의 힘과 희망을 발견한다.

이 메시지가 현실을 잠깐 잊게 하는 눈속임 같은 위무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1층이 낮은 자리가 아니라 힘센 자리라는 메시지는 문학이 아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을까. 높은 자리들이 모여 만들어놓은 제도와 그 제도를 유지하려는 힘을 뒤엎을 만큼 낮은 자리의 힘은 정말 센가.

요즘 뉴스는 촛불혁명을 이루어 낸 이 나라이지만 사회의 절반인 여성은 여전히 1층에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모래시계 뒤엎듯 건물 하나를 단번에, 손쉽게 뒤엎을 수는 없다. 하지만 1층에 있는 여성들의 안간힘은 꾸준하고 강력하게 계속될 것 같다. 유리천정은커녕 아직도 1층에서 2류 시민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촛불시민에 합당한 힘을 지닐 수 있길 바라고, 또 함께 한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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