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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다운로드 왜 하죠? 돈 내고 보는 게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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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다운로드의 세계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친구 손을 빌려, 전자상가 직원에게 부탁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눈을 비벼가며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각종 불법 파일을 내려 받은 게 이제는 추억거리가 되고 있다.
한때 ‘어둠의 경로’라는 말이 공공연히 통용될 정도로 국내 누리꾼들은 영화ㆍ음악ㆍ드라마ㆍ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불법으로 다운받아 왔다. 드라마와 영화 불법 다운로드는 개인 대 개인 파일 공유(P2P) 사이트에서, 클럽박스 같은 웹하드 서비스를 거쳐 다수 사용자에게서 조금씩 데이터를 나눠 받아 하나로 합치는 ‘토렌트’로 명맥이 이어졌다. 워낙 쉽게 원하는 콘텐츠를 구할 수 있어 ‘돈 주고 사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취급을 받아왔던 것도 사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P2P 방식으로 MP3 음악파일을 쉽게 공유했던 ‘소리바다’ 같은 경우 당시 가입자 수만 전국민의 절반 가까운 2,000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그런 얘기를 하면 되레 ‘언제적 불법 다운로더냐’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고, 영화ㆍ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한국 소비자도 기꺼이 콘텐츠에 지갑을 여는 추세. 실제 통계분석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넷플릭스 국내 순이용자 수가 88만명에 이르는 것은 물론이고 음원 시장 규모(한국콘텐츠진흥원)는 2003년 100억원에서 2013년 3,400억원으로 34배나 커졌다. “좋은 콘텐츠에는 얼마든지 돈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어느새 상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번거롭게 불법 다운로드 하느니 돈 내고 보는 게 훨씬 편하고 좋아요.”
스타트업 창업자인 우찬민(28)씨는 요즘 음악과 영상 콘텐츠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매달 20만원 이상을 지출한다. 다달이 구독료를 내는 서비스만 11개. 유튜브 영상을 광고 없이 보는 유튜브 프리미엄, 출퇴근 길에 듣는 음악 감상(멜론), 퇴근 후 영화나 드라마 감상(넷플릭스), 노트북과 휴대폰 등의 사진 등을 자동으로 저장해주는 클라우드 서비스(아이클라우드), 아이디어와 업무내용을 정리하는 노트 프로그램(에버노트) 등 서비스에 정기이용권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제도 자동으로 하게 돼 있어서 따로 신경 쓸 일이 없다”고 했다.
우씨는 소프트웨어도 모두 구매해서 사용한다. ‘몰래 공짜로 다운을 받아 프로그램을 까는 일’은 절대 없다. 업무용으로 쓰는 그래픽 프로그램을 위해 매달 8만원 상당을 내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어도비(Adobe)사의 포토샵.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프로그램이지만, 정품으로 구매하려면 100만원 정도를 줘야 해 불법 다운로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우씨는 “최근에 월 구독료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부담 없이 정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며 “부담되는 목돈이 아니라 기꺼이 지갑을 열어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고민이 없던 건 아니다. 당장은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게 경제적으로 보자면 큰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우씨는 제값을 내고 ‘구독’해야만 향유할 수 있는 서비스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큐레이션’과 ‘N스크린(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개 기기에서 연속으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 같은 것들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은 지금까지 소비한 콘텐츠 내역을 토대로 사용자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엄선해 화면에 편집, 추천해 준다. 오늘 뭐 볼지 고민할 필요 없이 데이터를 토대로 한 ‘취향 박물관’에 따라 소비만 해도 실패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돈 값을 하는 유료 구독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게 우씨 생각이다.
스마트폰이나 개인 노트북, 태블릿 PC 등 한 사람이 다양한 모바일기기를 소유한 요즘, 유료 구독 서비스는 더욱 빛을 발한다. 퇴근길 휴대폰으로 재생해서 보던 넷플릭스 영상을, 집에 와서는 스마트 TV로 보던 부분부터 다시 이어 볼 수 있다. 우씨는 “불법 다운로드를 받으면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 컴퓨터에 꽂았다가, 또 휴대폰으로 옮기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유료 구독을 하면 다양한 기기로 언제 어디서든 끊기지 않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훔쳐서 게임을 하게 되면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죠.”
국내 게임업계는 한때 불법 다운로드에 몸살을 겪었다. 2001년 한 국내 유명 게임회사 대표가 ‘게임은 7,000장이 팔렸는데, 업데이트 패치 파일을 받아간 사람은 10만명’라며 분통을 터뜨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도 정품 게임 구매가 자리잡아가는 분위기다. 게임 마니아 김민석(33)씨도 그 중 하나. ‘스팀(Steam)’이라는 게임 플랫폼에서 230개 가량 게임을 구매하는데 150만원 상당을 지불했다. 김씨는 “게임 마니아 중에는 1,000개 이상 구매하는 고수들도 많다”며 “게임을 좋아하는 것 치고는 보잘것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른 마니아들은 여전히 불법 다운로드에 손을 내미는 걸까. 김씨는 아니라고 단정한다. 특히 ‘스팀’ 이용자들은 직접 오프라인 상점에 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게임을 직접 구매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정품 게임을 돈 주고 산다고 했다. 오히려 ‘바이러스에 오염된 파일은 아닌지’, ‘정말 내가 원하는 버전의 게임이 맞는지’ 노심초사할 수고와 걱정이 없어 더 좋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렴하게 원하는 게임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할인 행사가 상시 열려 불법 다운로드를 하려고 노력을 들일 바에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게 간편하다는 인식이 보편화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학창시절, 친구들과 ‘불법 복제 CD’를 교환하기도 했고, ‘와레즈(warezㆍ불법으로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사이트의 총칭)’에서 하고 싶은 게임의 해적판을 구하기 위해 검색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15년 전, 테스트 이용자로 참여하면서까지 정식 발매를 학수고대했던 국내 게임이 불법 복제로 인해 제작사가 큰 손해를 입고 ‘망하는’ 걸 목격하고는 불법 다운로드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런 김씨는 “게임 구매 행위 자체가 게임을 더 즐겁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게 되면 몇 만원짜리 게임을 공짜로 하게 되니 당장은 돈을 번 느낌이지만, 공짜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종류의 콘텐츠와 달리 게임은 참여한 이후부터 결말을 알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하는 데서 새로운 재미가 시작된다”며 “훔쳐서 게임을 하게 되면 그 재미를 느끼기 전에 어렵거나 지루하다는 이유로 그만두기 쉽고, 결국 원래 느낄 재미를 못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게임 구매가 하나의 게임을 온전히 즐기는 첫 걸음이라는 얘기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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