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ㆍ김여정 청와대 회동 불발… 북미대화 가시밭길

입력
2018.02.21 16:3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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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 먼저 제의하고 文정부가 중재

北, 펜스의 탈북자 면담 등 빌미

뒤늦게 공개한 美, 北에 경고 메시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같은 부스에 앉아 개막식을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같은 부스에 앉아 개막식을 관람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참석차 방한 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과 만날 계획이었으나 북한이 회동 직전 취소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한국 정부 중재로 미국과 북한이 이미 탐색적 대화를 시도했지만 미국의 강경 입장에 북한이 불만을 품으면서 불발된 것으로 드러나 향후 북미 대화도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백악관 관계자 등을 인용해 펜스 부통령이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 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기로 했으나 회동 2시간 전 북한이 돌연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도 “부통령은 북한이 불법적 핵미사일을 포기해야 할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기회를 가지려 했으나, 마지막 순간 북한이 회담에 나오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붙잡지 못한 그들의 실패가 유감스럽다”며 보도 내용을 확인했다.

이 신문이 백악관 관계자 등을 인용해 전한 당시 상황에 따르면 회담을 먼저 제의한 쪽은 북한이었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하기 2주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북한이 펜스 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의향을 듣고 논의가 시작됐고, 한국 정부가 양측간 회담 성사를 위해 중재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펜스 부통령, 존 켈리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회동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특히 이 회의에서 회동 목표로 합의된 것은 북한과의 협상 개시가 아니라 북한 면전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입장은 그들(북한)이 우리 정책이 무엇인지, 또 우리가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실제 우리의 의도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 같은 회동 계획을 갖고서도 오토 웜비어 유족을 동반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고 탈북자와 함께 천안함을 방문하면서 “가장 강력한 추가 제재를 내놓을 것”이라고 북한을 압박했다. ‘회동을 하더라도 양보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던 것이다. 북한이 회담을 취소한 것도 이 같은 미국의 강경한 의사를 확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측 관계자도 “회담을 취소할 때, 북한이 탈북자 면담과 추가 제재 발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미국은 펜스 부통령 방한 이후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화를 하더라도 당근은 없다”며 탐색적 대화를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이 뒤늦게 회담 불발을 공개한 것도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 정책 기조가 변함 없고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북한이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묘한 것은 북한 측 행보다. 회담이 불발되긴 했지만 북한은 펜스 부통령의 강경 행보에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당일 오전까지도 회담에 나올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최종 지시로 불발된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막판까지 고심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노동신문에 북한이 ‘대화에도 준비돼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북한으로선 제재 압박이 심하기 때문에 출구가 필요하다”며 “북미 대화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태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경한 입장에 막힌 북한은 우선 남북 관계 개선에 주력하면서 기회를 엿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한미연합훈련 재개 시 추가 도발에 나서면 미국 역시 대화 결렬의 책임을 북한에 떠넘겨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다시 조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신은별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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