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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송’ 부르던 대학생들이… 멜로망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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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빠앙, 순쇠고기이~” 2013년 3월 서울 이태원동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M사 매장. 말끔하게 생긴 청년이 통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계산대의 남성 점원을 바라보며 한껏 기교를 부린 리듬앤드블루스(R&B) 창법으로 열창하는 모습이 ‘이건 뭐지’ 싶다. 개그맨 지망생의 도발이라고 하기엔 노래 실력이 시쳇말로 ‘고퀄’(높은 질)이다. 가수를 꿈꾸던 대학생들이 “상금을 준다고 해” ‘햄버거송’ 만들기 경연에 참여한 이벤트였다.
4년이 지나 이들의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새삼 화제다. 노래를 부른 사내와 그의 뒤에서 양팔을 흔들며 손뼉을 치는 청년이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이달 셋째 주(10월 16일~22일) 차트 1위를 휩쓸어서다. 남성 듀오 멜로망스의 김민석(보컬ㆍ26)과 정동환(피아노ㆍ25)이 주인공이다.
3인조 될 뻔한 멜로망스
4년 전 이벤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두 청년은 상금을 손에 쥐지 못했다. 최근 서울 서교동 한 음악 연습실에서 만난 김민석은 “(노래) 응모 기간이 지났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사람이 많은 이태원 매장까지 호기롭게 찾아가 놓고선 정작 노래 제출 마감 일을 헷갈려 기회를 놓쳤단다.
이 엉뚱하고 순진한 청년은 ‘미생의 끝판왕’이다. 김민석은 Mnet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2부터 시즌6까지 5년 연속 지원했다 떨어졌다. 같은 오디션에서 세 번 떨어진 여성 듀오 볼빨간사춘기는 카메라에 잡혀 화제라도 됐는데, 김민석은 단 한 번도 방송을 타지 못했다. 경연 초반인 지역 예선에서 매번 발목을 잡힌 탓이다. 멜로망스는 애초 3인조로 데뷔하려다 기타리스트가 떠나면서 2인조로 2015년 1집 ‘센티멘탈’을 냈다.
오디션 프로그램 후광 없이 이변 연출
이런 인생 역전이 또 있을까. 멜로망스는 음원 차트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7월 낸 앨범 ‘문라이트’ 타이틀곡 ‘선물’은 30일 7개 차트에서 2위를 달리고 있다.
공개 후 150위 권 밖으로 밀려났던 노래가 다시 돌풍을 일으킨 데는 입소문이 주효했다. ‘선물’은 멜로망스가 지난달 16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뒤 순위가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고음을 표정 변화 없이 편안하게 소화한 김민석의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다. 해당 동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순식간에 퍼졌고, 노래는 이달 중순에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인기 힙합그룹 에픽하이가 지난 23일 신곡을 낸 뒤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이 노래는 한 달 이상 차트 1~2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 번 역주행 흐름을 타고 정상을 밟은 노래는 꾸준히 사랑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멜로망스는 작은 인디 레이블(광합성) 소속으로, 대대적으로 앨범 홍보도 못했다. 볼빨간사춘기와 한동근처럼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주목 받은 적도 없다. 오로지 노래로만 일군 반란인 셈이다. 곡의 인기에 방송인 유세윤도 김민석의 ‘무표정 창법’을 따라 하며 ‘선물’ 패러디 영상을 이날 SNS에 올렸다. 김민석은 “솔직히 무대에 설 때 긴장돼 매번 떤다”며 “내 노래를 불편하지 않게 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편안하게 부르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수줍게 웃었다. 김민석은 중학교 3학년 때 입시 준비를 하느라 성악을 배웠다. 그의 발성이 안정적인 이유다.
김민석은 “사람들이 서로를 선물 같이 여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물’의 노랫말을 지었다. 2014년 자라섬국제재즈콩쿠르 대상 수상자인 정동환은 재즈풍의 피아노 연주로 흔한 발라드에 세련미를 더했다.
달빛처럼 은은한 음악을 만드는 두 청년의 노래는 때론 가스펠처럼 들린다. ‘이번 앨범에 실린‘자장가’가 대표적이다.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동기인 둘은 기독교인이다. “주일마다 교회를 간다”는 정동환은 “교회에서 음악을 배웠다”. 두 ‘교회 오빠’는 팬에게 특별한 ‘선물’도 받았다. 정동환은 “투병 중이던 여성 분이 저희 노래가 큰 위로가 됐다며 편지를 보낸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생활형 BGM ‘인디돌’의 인기
요즘 가요계는 멜로망스를 비롯해 볼빨간사춘기와 스탠딩에그 등 ‘인디돌’이 음원 차트에서 강세를 보인다. ‘인디돌’은 작은 인디 레이블 출신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다고 해 붙여진 별명이다. 볼빨간사춘기는 올 상반기(1월~6월)에 노래 ‘좋다고 말해’와 ‘우주를 줄게’ 등으로 음원 사이트에서 2억건이 넘는 스트리밍(재생)을 기록하며 음원 성적 1위(가온차트 기준)를 차지했고, 스탠딩에그는 지난해 8월 낸 ‘여름 밤에 우린’ 한 곡으로 같은 해 3,000만건이 넘는 재생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다. “주제의식 없는 가사, 단편적인 멜로디의 아이돌 댄스 곡에 물림을 느낀 청취자들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소비 욕구가 높아져”(김반야 음악평론가) 생긴 반향이다.
파격보다는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게 ‘인디돌’ 음악의 공통점이다. ‘피로사회’라 불리는 힘든 현실에 생활형 배경음악(BGM)을 찾는 사람이 많아져 생긴 결과다. 실험적이거나 격정적인 멜로디에 피로감을 느끼는 청취자들이 많아지면서 흘려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인기를 얻는 시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성한 음악평론가는 “앞으로 더욱 ‘생활형 BGM’ 같은 노래를 내놓는 인디 레이블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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