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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광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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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아니라 영예롭게 회복한다는 뜻
자결권 가진 정치공동체가 회복 대상
역사 속에서 자기정체성을 찾고자 해
광복이란 빛(光)을 회복한다(復)는 뜻이 아니다. 광복에서 광(光)이란 존중의 뜻을 담는 글자로서, “영예롭게”라는 뜻을 부여하는 부사적 기능을 한다. 따라서 광복이란 영예롭게 (무엇인가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광복의 뜻은 여러 전거를 갖고 있다. 예컨대 <진서, 환온전> (晉書, 桓溫傳)에는 광복구경(光復舊京)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옛 도읍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회복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구경”(옛 도읍)이지 “빛”이 아니다. “광”은 “회복하다”는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적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광”의 용법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음식점에 가면 환영광림(歡迎光臨)이란 액자가 걸려 있곤 하는데, 그 ‘광’ 역시 광복에서 ‘광’의 용법과 같다. 즉, “환영광림”이란 “빛”을 환영한다는 뜻이 아니라, 영예롭게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광복절”이라는 단어에는 무엇을 회복하는지 알려주는 목적어가 빠져 있다.
그렇다면 광복이란 무엇을 회복하는 것일까. 광복이라는 단어에 목적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광복을 맞은 사람들은 그 때 회복하는 것이 자결권을 가진 정치공동체임을 알았다. 광복이라는 단어는 당시 이미 정치공동체와 관련되어 사용되는 용례가 빈번했기 때문에, 뚜렷한 목적어 없이도 그 뜻을 미루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청나라 말기 사상가 장병린(章炳麟)은 혁명가 추용(鄒容)의 저서 <혁명군>(革命軍)의 서문에서 “중국은 이미 만주족에게 망했으니, 마땅히 도모해야 할 것은 광복이다”(今中國旣滅亡於逆胡, 所當謨者光復也)라고 말한 바 있다.
잃었던 국가를 회복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체제를 그대로 복원하기 원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보다 나았던 어떤 과거를 상상하고, 그 상상된 과거를 회복하기를 원한다. 장병린 역시 청나라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청나라 이전에 존재했던 “중국”을 “광복”하고자 했다. 대한제국 설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종과 대신들이 나눈 대화를 살펴보면, 대한제국은 오래 전 사라진 명나라를 계승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한결같이 명나라를 표준으로 삼아 빛나는 문화와 두터운 예의가 직접 일통(一統)에 잇대고 있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 입니다.” 즉 대한제국의 설계자들 역시 치욕스러운 근과거(近過去)와는 다른, 상상된 먼 과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대한제국 이후 약 35년 뒤 이 땅에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이제 더 이상 상상 속의 명나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하지 않는다. 동시에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통해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건설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쨌거나 역사 속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기에,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광복의 목적어는 무엇인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이라는 헌법상의 표현 뒤에 숨어 있는 이 나라 정체성의 오랜 근거는 무엇인가.
치밀한 사료읽기와 정교한 분석에 기초한 대답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삼 역사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공동체라는 이름 하에 동창회를 연다. 그 동창회에는, 벼락출세한 최근 경력으로 별 볼일 없었던 과거 학창시절을 만회하기 위해서 나온 사람도 있고, 현재의 사회생활이 고단한 나머지, 과거 학창시절을 미화하기 위해 나온 사람도 있고,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으니 죽어버리겠다고 호언하던 과거의 문학소년도 있고, 매장품이 없는 무덤만 전문적으로 파헤치는 도굴꾼 동창생도 있고, 심지어는 동창회 일원이 되고 싶은 나머지, 졸업장을 위조해서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동창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배설을 해야 하는데 항문이 없는 존재들처럼 입으로 아무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이들의 동창회보도 언젠가는 역사가 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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