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권운동의 상징 민주화 여정 멎다

입력
2017.07.14 02:15

5월 간암 발병 병세 악화로 사망

1989년 톈안먼 단식농성 참석 뒤

中 민주화 운동 적극 활동

2008년 ‘공산당 일당’ 종식 요구

08헌장 서명운동 주도 9년 수감

아내 자유 위해 ‘해외 치료 요청’

中 거부로 ‘마지막 소원’ 무산

13일 숨진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ㆍ61)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사장로 선정됐으나, 당시 수감 생활 중이던 탓에 끝내 시상하지는 못했다. 사진은 201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토르뵤른 야글란(Thorbjoern Jagland)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빈 의자에 놓여진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증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오슬로=AP 연합뉴스
13일 숨진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ㆍ61)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사장로 선정됐으나, 당시 수감 생활 중이던 탓에 끝내 시상하지는 못했다. 사진은 201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토르뵤른 야글란(Thorbjoern Jagland)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빈 의자에 놓여진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증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오슬로=AP 연합뉴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ㆍ61)가 13일(현지시간) 끝내 사망했다. 그 동안 그의 가족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해외에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거듭 요구했음에도 이를 묵살해온 중국 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들끓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사법국은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문을 통해 병원에서 간암 치료를 받던 류샤오보가 이날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를 치료해온 선양 소재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은 “12일 오후부터 류샤오보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돼 호흡 곤란을 겪었으며, 신장ㆍ간 기능이 떨어지고 혈전이 생겨 고통스러워하다가 13일 오후 숨졌다”고 전했다.

1955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인권을 위한 장기적이고 비폭력적인 싸움을 벌여온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다. 1984년 베이징사범대 중문과에서 석ㆍ박사 학위과정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체제 비판적 문학비평 활동을 병행하며 ‘문단의 흑마’라는 별칭을 얻었다.

지난달 류샤오보가 중국 내 병원에서 아내인 류샤(劉霞ㆍ55)의 도움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선양=AP 연합뉴스
지난달 류샤오보가 중국 내 병원에서 아내인 류샤(劉霞ㆍ55)의 도움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선양=AP 연합뉴스

류샤오보가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학자로 체류중이던 1989년에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사태는 그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류샤오보는 즉시 귀국해 ‘사군자 단식농성’으로 학생들의 신뢰를 얻었고, 정부와 학생 모두의 반성을 요구하며 6월 3일 군과 학생 지도부 간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튿날 무력진압이 벌어졌고 그 역시 체포돼 반혁명 선전선동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톈안먼 시위을 이끈 지도부 대부분이 해외망명을 택했던 것과 달리 류샤오보는 중국에 남아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1995년 5월 톈안먼 사건 재평가를 요구하다 9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했고, 이듬해에는 중국의 위협적 대만정책을 비판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10ㆍ10 선언’을 발표했다가 노동교화 3년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그는 작가활동을 병행하며 중국의 참혹한 인권 상황을 적극 비판해왔다. 특히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민주화를 요구하는 ‘08헌장’을 준비하다 발각돼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중국에서 기본적 인권을 위해 기나긴 비폭력 투쟁을 벌였다”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을 인정하지 않았고 해외언론과의 접촉을 이유로 그의 아내 류샤(劉霞)마저 가택연금 조치에 처했다. 감옥에 있던 그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노벨위원회는 비어 있는 그의 의자에 메달을 걸어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에야 아내를 다시 만난 류샤오보는 홀로 남겨질 아내의 자유를 위해 해외치료를 요청했으나 중국 정부의 거부로 ‘마지막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베이징= 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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