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TALK] 수평조직 만든다는데… LG 직원들 표정 어두운 이유는

입력
2017.07.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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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줄어 일할 의욕 ‘다운’

조기 퇴직ㆍ연봉 감소 걱정도

“직급을 단순화해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수평적ㆍ창의적ㆍ자율적 조직문화를 만들겠다.”

올 5월 LG전자가 직급체계 개편 계획을 내놓으면서 밝힌 취지입니다. LG전자는 이달 1일자로 기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5단계였던 직급을 역할에 따라 ‘사원-선임-책임’ 3단계로 바꿨습니다. 사원 직급은 그대로고, 기존 대리~과장은 ‘선임’으로, 차장~부장은 ‘책임’으로 묶였습니다. LG그룹에서 이 같은 직급 체계를 도입한 건 세 번째로, 지난 4월 LG디스플레이가 첫발을 뗀 데 이어 LG유플러스도 5월 시행했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LG화학도 직급체계 간소화를 선언했죠. 핵심 계열사들이 동참하면서 곧 그룹 전체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직위나 연공 중심 직급 체계를 없애는 건 최근 재계의 추세인데요. 삼성전자가 지난 3월 기존 사원1(고졸)~부장 7단계 직급 대신 개인의 직무역량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CL(커리어 레벨) 1~4 체제를 도입한 게 기폭제가 됐습니다. 이와 함께 연차와 관계없이 서로를 ‘님’으로 부르도록 했죠. 국내 최대 기업이 신생창업기업(스타트업)처럼 활력 넘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자며 인사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자 LG그룹, 엔씨소프트 등도 뒤따랐습니다. 이들 회사는 새 제도가 직원들의 주체성, 책임감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신속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직원들 표정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승진 단계가 줄어들다 보니 아무래도 입사 초년생들은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 하나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KT는 2010년 사원부터 부장까지 호칭을 모두 ‘매니저’로 통일하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4년 만인 2014년 폐지했죠. 가장 높은 직급을 이전보다 빨리 달게 된 만큼 ‘회사도 더 빨리 나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보다 큰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임금입니다. LG전자, LG화학 등 일부 계열사는 매년 성과에 따라 매년 임금을 재산정하는 ‘연봉제’와 직급이 높아질 때마다 임금도 오르는 ‘호봉제’를 혼용하고 있는데요. 직급 체계가 바뀌면서 임금 산정 방식도 변화가 불가피해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들은 월급이 줄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데요.

자율적인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 임금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게 불안하면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겁니다. 새 제도가 제빛을 발하려면 직원들의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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