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연구성과 누락…“ 20년 전으로 후퇴”

입력
2016.11.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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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령학자 의견만 반영

인과관계 설명 없이 사실만 나열

글자 빽빽… 자료ㆍ본문 따로따로

정부가 만든 국정교과서인 고등학교 ‘한국사’ 225쪽 '일제에 맞선 여성 독립운동가'에는 무려 1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소개돼 있다. 전문가들은 “국정교과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역사적 의미,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만든 국정교과서인 고등학교 ‘한국사’ 225쪽 '일제에 맞선 여성 독립운동가'에는 무려 1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소개돼 있다. 전문가들은 “국정교과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역사적 의미,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역사 국정교과서는 내용도, 형식도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 설명과 달리 최신 연구성과가 누락된데다,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나 뜻풀이 없이 사실만 나열해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역사교육학회,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7개 역사관련 학술단체로 꾸려진 역사교육연대회의가 국정교과서를 분석해 30일 밝힌 결과다.

최신 연구 대신 고령 학자 저서 내용 반영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를 공개한 28일 “최신 연구성과를 충실히 반영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오히려 기존 검정교과서에 비해 퇴보한 모습”이라고 맞섰다. 특히 고려시대는 필자 3명이 모두 은퇴한 고령 학자들로 최신 연구성과를 소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고려 후기 권문세족을 권문과 세족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미 1990년대 초 제기된 학설이라는 것이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2000년대 고려시대사 연구의 경향은 본관제, 고려의 천하관, 국제관계사, 친족제도, 여성의 직위 등이지만 이 분야 성과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권문과 세족 구분 등은 필자인 박용운 고려대 명예교수의 저서 ‘고려시대사’에 있는 내용이다.

또 일제강점기 부분은 수탈과 저항에 대한 내용만 있고, 그 시기 경제 사회 문화와 사람들의 일상생활 변화 등 생활사 부분이 거의 사라졌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20, 30년 동안 역사학계 연구성과가 거의 반영하지 않은 시대역행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사실 나열에 급급… 비판적 사고 어려워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와 의미를 친절히 설명하지 않고 사실만 쭉 열거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중학교 ‘역사2’는 유럽의 신항로 개척 부분에서 ‘삼각무역’(35쪽)의 뜻, 영국 혁명과 미국혁명(41쪽) 부분에서는 그 의의 등이 제대로 설명돼 있지 않다. 고교 ‘한국사’의 여성 독립운동가(225쪽) 부분에서는 한 쪽에 무려 1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소개돼 있다.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은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역사학적 의미를 깨우쳐주거나 역사적 개념들을 설명하기보다 단순한 사실만 일방적으로 나열해 급급해 조악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중고생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실만 열거되고, 해석의 다양성이나 비판적 사고를 배울 수 있는 탐구자료와 학생활동은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2단 구성으로 글자가 빽빽한데다 도표 사진 등의 자료와 본문이 따로따로 배치돼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역사교육연대의 지적이다. 중학교와 고교 교과서에서 한 사건에 대한 서술이 거의 똑 같은 부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174쪽에는 글자만 빽빽이 들어서 있고, 175쪽에 지도와 사진 자료 등이 따로 모여 있다. 역사 교사와 교수들은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져 학생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교과서"라고 지적한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174쪽에는 글자만 빽빽이 들어서 있고, 175쪽에 지도와 사진 자료 등이 따로 모여 있다. 역사 교사와 교수들은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져 학생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교과서"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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