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혼란 핑계로… 터키, 유럽과의 기싸움 이기려 난민 뒷문 열어’

입력
2016.08.18 16:42

8월 이후 그리스에 日평균 80명

난민캠프 수용 정원 훌쩍 넘어서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체류 중인 난민들이 지난 4월 5일 터키 강제 송환 결정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체류 중인 난민들이 지난 4월 5일 터키 강제 송환 결정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터키 쿠데타 이후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로 유입되는 난민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합의 끝에 난민 통제를 책임 진 터키가 정치적 혼란을 이유로 난민 문제에 손을 놓은 탓이다. 일각에서는 쿠데타 이후 유럽사회가 철권을 휘두르고 있는 에르도안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자 터키가 의도적으로 ‘뒷문’을 열어놓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 BBC 등은 17일(현지시간) 국제 아동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을 인용해 지난 3월 EUㆍ터키 간 난민 대책 합의 후 급감했던 난민이 터키의 혼란을 틈타 그리스로 다시 몰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8월 이후 그리스 레스보스, 키오스 등 에게해 섬에 도착한 난민은 17일 기준 1,367명, 하루 평균 80명에 달한다. 지난 5월 한달 간 유입된 1,721명을 곧 넘어설 전망이어서, 합의 5개월 만에 사실상 효력을 다했다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 섬 지역에는 이미 1만명 이상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지 출신 이민자들이 최장 2년 간 이어지는 난민 심사를 기다리며 난민 캠프에 수용돼 있다.

난민들이 그리스로 발걸음을 돌린 최대 원인은 EU와 터키 간 공조 실패에 있다는 지적이다. 터키는 2015년 11월과 올해 3월 연이어 EU로부터 지원금, EU 비자 면제 혜택을 얻어내며 그리스행 난민 통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쿠데타 시도 후 에르도안 정권의 초점이 정권 전복 세력에 대한 통제로 옮겨가면서 이른바 난민 밀수 단속에 소홀해졌다는 현장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EU는 터키 측에 상황 악화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EU가 터키 국민의 비자 면제를 결정하기 위해선 터키 정부가 먼저 언론 및 야당 탄압의 근거로 삼는 테러방지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터키는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 국민의 EU 비자가 면제되지 않으면 난민송환협정을 파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양측이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동안 그리스 섬 주민 및 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난민 수용소 내 어린 아이들부터 모유 수유 중인 여성들까지 생활 용수 및 식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그리스 5개 섬 내 난민은 1만700여명으로 난민 캠프의 수용 인원(7,450명)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또한 직접 난민 구조에 힘쓰던 섬마을 주민들도 여름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수입이 최대 80% 줄어들자 난민에 대한 반감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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