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앞두고 엇갈리는 희비…백화점 울고, 마트 웃고

입력
2016.08.0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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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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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응·접대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같은 유통·제조업체라도 업태나 업종에 따라 미묘한 표정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의 경우 90%의 선물세트가 5만원을 넘는 김영란법 저촉 대상인 반면, 마트나 편의점은 반대로 5만원 이하 선물 비중이 80~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가 선물세트 구색이 풍부한 식품업체도 반사이익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8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선물세트 매출 가운데 85%는 5만원이상 가격대의 선물이 차지했다. 현대백화점에서도 올해 설이나 작년 추석 당시 5만원이상 선물의 매출 비중은 약 90% 수준이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명절 때 1,500여가지 선물 세트를 준비하지만, 백화점 선물세트의 주류인 한우, 굴비, 청과 등으로 5만원 미만 선물세트를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따라서 다음 달 28일 5만원을 넘는 선물 접대를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유통 채널 가운데 백화점 선물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형할인마트의 입장은 백화점과 다소 차이가 있다. 올해 설 이마트에서 팔린 선물세트 가운데 대부분인 87.8%(수량 기준)가 김영란법과 무관한 '5만원 미만' 선물이었다. 지난해 추석 이마트 선물 중 5만원 미만의 수량 비중도 89.1%에 이르렀다. 10개 선물세트가 팔리면 9개는 5만원을 넘지 않는 저가 선물이라는 얘기다. 매출 기준으로도 작년 추석과 올해 설 5만원 미만 선물의 비중은 67~69% 수준이었다.

편의점의 상황도 마트와 비슷하다. 편의점 씨유(CU)의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 선물 매출 가운데 각각 70%, 72%가 5만원대 미만의 선물이었다. CU 운영사 BGF리테일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5만원대 이하 상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협력업체들과 이 가격대의 다양한 선물세트 개발에 나설 것"이라며 "명절 선물 시장에서 지금까지 편의점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 법 시행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도 김영란법 시행으로 오히려 명절 선물세트 판매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햄·참치 등 통조림과 식용유 등 가공식품으로 구성된 선물세트는 대부분 5만원을 넘지 않아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추석 선물세트 가운데 5만원 이하 상품은 94.5%(수량 기준)를 차지했다. 매출 기준으로는 5만원 이하 상품 비중이 89.5%였다. 대상의 작년 추석 선물세트 구성에서 5만원이 넘는 제품은 1.5%에 불과했고, 올해 추석에도 1.7% 수준에 그쳤다.

올해 추석 선물은 김영란법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식품업계는 이번 추석부터 고가 선물세트가 위축되는 현상이 미리 나타나면서 합리적 가격대와 실용성을 앞세워 가공식품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김영란법 영향으로 가공식품 선물세트가 고가 선물세트의 대체재 역할을 하면서 판매가 다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유통·식품업계에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한국 특유의 명절 선물 문화 자체가 위축돼 고가·저가 가격대 구분 없이 전체 선물시장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저렴한 식품업체들에 유리한 상황이지만, 선물시장 자체가 죽을 수도 있다"며 "김영란법 시행으로 선물 문화가 사라진다면 유통, 식품업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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