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시티의 기적’을 꿈꾸는 알바니아

입력
2016.06.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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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선수들이 20일 유로 2016 A조 최종전에서 루마니아를 누르고 유로 첫 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리옹=AP 연합뉴스
알바니아 선수들이 20일 유로 2016 A조 최종전에서 루마니아를 누르고 유로 첫 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리옹=AP 연합뉴스

‘검은 독수리’가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할 준비를 마쳤다.

‘슈키퍼리아(독수리의 나라)’라 불리는 알바니아가 유럽축구선수권 첫 승의 역사를 썼다.

알바니아는 20일(한국시간) 프랑스 리옹 스타드 드 리옹에서 열린 루마니아와 유로 2016 A조 마지막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전반 43분 아르만도 사디쿠(25ㆍ바두즈)의 헤딩 결승골을 끝까지 지켰다. 앞서 프랑스(0-2)와 스위스(0-1)에 연패했던 알바니아는 유로 첫 득점과 첫 승을 동시에 기록했다. 1승2패(승점 3)로 조 3위가 된 알바니아는 다른 조 결과에 따라 와일드카드(조 3위 6팀 중 상위 4팀)로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다.

현지 언론들은 ‘알바니아가 믿을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며 주목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 반도에 있는 인구 360여만 명의 작은 나라다. ‘유로 1964’ 지역 예선 참가를 시작으로 메이저 대회 문을 두드렸으나 한 번도 본선을 밟은 적이 없다. 1997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16위까지 떨어질 정도로 축구 변방이었다.

알바니아가 포르투갈, 덴마크, 세르비아, 아르메니아와 함께 유로 2016 예선 I조에 속했을 때 통과할 거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알바니아는 1차전부터 포르투갈을 1-0으로 잡는 파란을 일으켰고 4승2무2패를 마크하며 2위로 당당히 본선에 진출했다. 1위 포르투갈(7승1패)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팀이 알바니아였다.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앙숙 세르비아와 원정 경기가 예선의 최대 고비였다. 두 나라는 2008년까지 이어진 코소보 사태(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과 세르비아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유혈 사태) 이후 늘 긴장 상태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전반 종료 직전 그라운드 위에 알바니아 깃발이 꽂힌 무인기(드론)가 날아다니자 세르비아 수비수가 이를 잡아채 깃발을 뽑았고 알바니아 선수들이 달려가 감정 다툼을 벌였다. 흥분한 세르비아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욕설과 야유를 퍼부으며 오물을 투척했다. 알바니아 선수들은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경기 재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알바니아에 0-3 몰수 패를 선언했다. 알바니아는 즉각 반발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고 CAS는 ‘주최 측인 세르비아가 안전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며 반대로 알바니아의 3-0 몰수 승을 판결했다. 이때 얻은 승점 3을 발판 삼아 알바니아는 극적으로 유로 2016에 참가했다.

알바니아 국민들이 수도 티라나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자국의 승리가 확정되자 일제히 일어서 기뻐하고 있다. 티라나(알바니아)=AP연합뉴스
알바니아 국민들이 수도 티라나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자국의 승리가 확정되자 일제히 일어서 기뻐하고 있다. 티라나(알바니아)=AP연합뉴스

알바니아 선전의 비결로 이탈리아 출신 잔니 데 비아시(60)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11년 알바니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유로 2016에 진출 하겠다”고 공언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부임 직후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스카우트를 위해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탈리아는 물론 스위스와 독일까지 가서 옥석들을 찾았다. 지금 벨기에 국가대표인 아느낭 야누자이(21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비아시 감독의 설득에 한때 알바니아 대표팀을 고민한 적이 있다.

이렇게 발탁한 대표적인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형제 대결을 벌인 타울란트 쟈카(25ㆍ바젤)다. 타울란트는 동생 그라니트 쟈카(24ㆍ묀헨글라드바흐)와 스위스 청소년대표까지 함께 뛰었지만 성인이 된 뒤 알바니아 국적을 택했다. 동생 그라니트는 쭉 스위스 대표로 성장했다. 공교롭게 유로 2016에서 스위스와 알바니아는 한 조가 돼 첫 경기에서 격돌했다. 형제는 가슴에 다른 국기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알바니아 대표팀에는 이처럼 외국에서 온 선수들이 많지만 비아시 감독의 리더십 아래 하나로 뭉쳤다. 알바니아의 수비수이자 주장인 로릭 카나(32ㆍ낭트)는 “이것이 우리의 자부심이고 상징이다”고 말했다.

루마니아를 꺾은 뒤 두 팔을 들고 포효하는 잔니 데 비아시 알바니아 감독. 리옹=AP 연합뉴스
루마니아를 꺾은 뒤 두 팔을 들고 포효하는 잔니 데 비아시 알바니아 감독. 리옹=AP 연합뉴스

비아시 감독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기적의 우승을 일군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 레스터시티 감독과 오랜 친구다. 라니에리 감독에게 아낌없이 축하를 건넸던 그는 “알바니아도 이번에 레스터시티와 같은 꿈을 실현 하겠다”고 다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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