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는 감옥 같고 난민촌 밖은 더 혹독한 ‘생존 전쟁’

입력
2016.06.20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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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터키 이즈미르의 파묵야즈 마할레 지역의 시리아 난민촌을 찾은 본지 기자(왼쪽)를 난민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8일 터키 이즈미르의 파묵야즈 마할레 지역의 시리아 난민촌을 찾은 본지 기자(왼쪽)를 난민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8일 터키 이즈미르의 파묵야즈 마할레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에서 난민 아이들이 천막 안에 앉아 불안한 눈길로 밖을 쳐다보고 있다. 옆으로는 파리를 쫓기 위해 덮어 놓은 모기장 아래로 아기가 자고 있다.
8일 터키 이즈미르의 파묵야즈 마할레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에서 난민 아이들이 천막 안에 앉아 불안한 눈길로 밖을 쳐다보고 있다. 옆으로는 파리를 쫓기 위해 덮어 놓은 모기장 아래로 아기가 자고 있다.

“무상의료ㆍ교육과 취업비자 제공”

EU 가입 노린 터키 정부 공수표

300만명 중 10만명만 비자 획득

아이들도 저임금 과잉 노동 빠져

학교는 입학ㆍ병원은 진료 거부

인터뷰 요청에 담당 부서는 침묵

8일 터키 서부해안도시인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파묵야즈 마할레 지역의 시리아 난민촌. 시리아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난민 350여명이 20여 개의 천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지척에 보이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도착하기만 하면 유럽의 낙원으로 향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지낸 지가 8개월째다.

난민촌을 들어서자 전날 비가 왔는지 축축하게 젖은 땅에서 비릿한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다. 시설이라고는 잠을 잘 수 있는 천막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논밭에서 흐르는 흙탕물을 식수로 이용했고 천막 주변에 땅을 파고 용변을 처리해 파리가 들끓었다. 동행한 이즈미르의 토르발르 신문사 기자인 셰르칸(42)은 “난민촌을 만드는 건 불법”이라면서 “난민을 별도로 지정한 난민캠프에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터키 정부도 불법 난민촌을 수수방관하는 셈”이라고 했다.

최근 유럽연합(EU)과 터키 정부가 난민의 EU유입 억제에 합의한 이후 난민촌 생활은 더욱 비참해졌다. 유럽행이 사실상 좌절되면서 난민들은 삶의 의지마저 사라져 버렸다. 난민촌에 살고 있는 아흐마드 슐레이만(40)은 “유럽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꿈에 인근에서 날품을 팔아 근근이 연명해 왔지만 이제 일할 의미를 잃어 버렸다”고 말했다. 8살쯤 돼 보이는 아들은 몇 달 전 교통사고를 당해 발목 아래가 흉하게 잘려져 나갔지만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실패로 끝난 아랍의 봄은 시리아 난민들을 끝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약 60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인접국인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등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난민들을 환영하는 국가는 아무도 없었다.

난민촌 밖이 더욱 혹독한 난민들

터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난민캠프를 제공하고 있지만 난민들조차 캠프를 외면하고 있다. 철저한 통제 하에 죄수처럼 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난민캠프는 감옥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오후 찾은 이즈미르 칠리 지역의 시리아 난민캠프는 4m에 달하는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채 삼엄한 감시 하에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난민캠프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정문 앞에서 만난 난민캠프 관계자는 “시리아 난민이 이곳에 몇 명이 있는지 말하는 것조차 불법”이라며 강한 경계심을 보였다.

터키 정부의 수수방관과 난민들의 외면 속에 자연스럽게 난민촌은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 시리아와 맞닿은 국경지대에는 난민캠프가 즐비한 반면 유럽으로 가는 길목인 에게해 연안에는 난민촌이 집중돼 있다. 터키가 국경을 닫기 전인 올해 초만 해도 그리스와 가까운 이즈미르의 경우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하지만 유럽행이 사실상 막히면서 난민촌 생활이 막막해진 가운데 난민촌 바깥은 더욱 혹독하다. 9일 오전 이즈미르 바스마네 지역의 정비소. 시리아 알레포에서 살다 2년 전 가족과 함께 터키로 온 소년 모하멧 알리(12)가 차량에서 배어나온 기름과 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옷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3개월 전부터 정비소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모하멧이 하루 14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일주일에 100리라(약 4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난민들은 대부분 일용직이나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껌이나 군 것질 거리를 파는 난민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난민촌에 사는 압둘 라만(67)은 “공사장 인부나 밭일을 하며 버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며 “시리아도 터키도 싫다. 국경이 열리면 유럽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기본적 혜택마저 받지 못하는 터키 난민들

터키 정부는 난민캠프나 난민촌을 가리지 않고 시리아 난민들에게 무상의료와 교육, 취업비자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국립병원은 치료를 거부하고 사립병원은 아랍어에 능통한 의료진이 없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이 터키에서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는 꿈도 꿀 수 없다. 터키 정부는 올해 1월 시리아 난민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취업비자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터키 노동청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취업비자를 받은 시리아 난민 수는 약 10만3,000명에 불과했다. 터키에 들어온 약 300만명의 시리아 난민 대부분은 전부 불법 노동자인 셈이다.

난민 어린이들까지 대부분 생계에 내몰리는 형편이고 보니 교육은 자연히 뒷전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청소년의 90% 이상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리아 난민인 압둘 카이더(19)는 “시리아 난민을 터부시하는 터키 주민들의 불만에 학교에서 난민 아이들의 입학을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시리아 난민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거다. 시리아 난민이 터키에서 불법체류자 신세를 벗어나려면 거주지를 증빙하는 서류를 들고 이민청에 가서 ‘킴리크’(외국인등록증)을 발급 받아야 한다. 하지만 거주지 증빙에 동의하는 터키 주민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같다. 때문에 난민캠프나 난민촌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상당수의 난민들은 대부분 한 집에 3, 4 가족이 함께 모여 살고 있다. 바스마네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인 케말(21)은 “전쟁을 피해 터키로 왔지만 터키에는 학교도 친구도 미래도 없다”며 “전쟁이 끝나면 시리아로 돌아가 법을 공부해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9일 터키 이즈미르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사는 바스마네의 한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소년인 모하멧(왼쪽)과 오마르. 모하멧은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일하지만 일주일에 받는 손에 100리라(약 4만원)에 불과하다. 터키의 하루 일당이 보통 100리라 정도다.
9일 터키 이즈미르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사는 바스마네의 한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소년인 모하멧(왼쪽)과 오마르. 모하멧은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일하지만 일주일에 받는 손에 100리라(약 4만원)에 불과하다. 터키의 하루 일당이 보통 100리라 정도다.
9일 터키 이즈미르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사는 바스마네의 한 이발소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소년 알리.
9일 터키 이즈미르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사는 바스마네의 한 이발소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소년 알리.

난민정책 내팽개치고 두말하는 터키 정부

시리아 난민이 주변국으로 흘러 들어오자 레바논과 요르단 등은 시리아와 접경지역에 난민캠프를 만들어 수용하고 있다. 국경지대에서 난민을 차단해 국내 유입을 막겠다는 사실상의 수용소인 셈이다. 하지만 터키는 조금 달랐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의 자국 내 정착을 돕기 위해 무상의료와 교육, 취업비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오지 않게 터키가 수용해주는 대신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해주겠다고 EU가 당근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 난민들의 상황도 주변 다른 국가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터키 정부가 시리아 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터키 당국도 시리아 난민들을 국가가 운영하는 캠프에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올해 초 이즈미르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체포해 강제로 난민캠프에 수용하는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수천 명의 난민이 이즈미르 외곽 지대인 마나사와 캐멀팔쳐, 아키사이르 등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난민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통제는 더욱 힘들어졌고 터키 정부는 끝내 강제 수용 정책을 중단했다.

터키 정부는 이제 난민 정책에서 사실상 손을 놓은 듯했다. 현지 취재에 앞서 두 달 가량 담당 부서인 터키 재난위기관리청(AFAD)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이즈미르의 코나크 광장 근처에 있는 이민청에도 직접 찾아가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토르발르 신문사 기자인 셰르칸은 “터키 정부에 난민캠프 문제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며 “난민캠프의 상황이 외부로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즈미르(터키)=글ㆍ사진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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